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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분석: 수정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평화 구상안, 결국 우크라가 받아들이게 될 수도

1시간 전
안드레이 예르마크와 마르코 루비오
Reuters
지난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담을 진행한 안드레이 예르마크(왼쪽)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와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을 매우 간절히 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그보다도 더 간절히 평화를 갈망하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 측이 추수감사절까지 항복에 가까운 조건으로 협정에 동의하라고 압박하자 반발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는 스위스 제네바에 급히 고위 대표단을 파견했고, 지난 23일(현지시간) 내내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짙은 창문의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두 주요 회담장을 오고 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독일, 프랑스, 영국의 안보 당국자들도 회담에 참석했다.

단 한 번 취재진이 얼핏 포착한 안드레이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협상단 대표는 굳은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공개된 협상안 초안은 러시아의 입맛에 지나치게 들어맞는 내용이었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초안 작성자가 크렘린궁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회담을 시작해야만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빠르게 서명하지 않으면 그 결과를 감수하게 되리라 으름장을 놓았고, 우크라이나는 대화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23일 밤, 루비오 장관은 "엄청난 진전"을 보인 대화였다면서, "몇 가지 사항"만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루비오 장관은 "민감한"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공동 성명을 통해 "개정되고 수정된 프레임워크"가 탄생했다면서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그 내용을 확인하진 못했으나, '파이낸셜 타임스'는 대표단 중 한 명인 세르기 키슬리차 우크라이나 외무차관의 발언을 인용하여, 이번 새로운 구상안은 총 19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존 초안에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대폭 수정된 구상안에는 유럽 측이 제시하고 로이터 통신이 공개한 사항 중 적어도 일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수용하기 더 쉬워진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의 모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신청은 자동으로 거부되며, 우크라이나 병력 규모를 제한한다는 내용도 없다.

서방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영구적으로 주둔하지는 않는다는 표현은 있으나, 이 또한 전면적으로 금지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11년간 목숨을 걸고 지켜온 땅을 둘러싼 민감한 영토 문제와 관련해서는, 동부 돈바스의 남은 지역을 러시아에 아무런 대가 없이 넘긴다는 내용도 사라졌으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오로지 외교적 수단을 통해서만 되찾을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미 수용한 바 있다.

전쟁 범죄에 대한 전면 사면 조항도 삭제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 보장에 관한 언급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가 NATO 헌장 제5조 형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즉, 러시아가 다시 침공할 경우 미국이 반드시 방어에 나설 의무가 있다는 의미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밝힌 핵심 지점이다.

유럽이 제안한 이러한 내용들이 이번에 수정된 구상안에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번 합의가 긍정적인 의미에서 "상당히 수정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입장에 기울어 보이던 초안이 어떻게 단 하루 만에 이렇게 수정될 수 있었을까. 협상장에 트럼프 대통령의 러-우 전쟁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 같은 강경파 인사가 있었던 점을 고려해보면 더욱더 예상 밖이다.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던 초안은 위트코프 특사가 올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직접 만난 것에서 비롯된다. 당시 위트코프 특사는 논란 많은 러시아 측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채 돌아왔다.

반면 이번 계획은 우크라이나가 궁극적으로는 서명할 수 있을 듯한 내용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자신에게 "감사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또다시 질책하던 트럼프 대통령도 "무언가 좋은 일이 올 수 있다"고 언급하며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좋은 일일까. 러시아가 강제적 타의가 아닌 스스로 전투를 포기하리라는 조짐은 여전히 없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푸틴 대통령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군사적으로 자신감이 높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내 부정부패 스캔들과 정치적 문제, 징병 문제에 더해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올리고 있는 군사적 성과들을 바탕으로 푸틴 대통령이 더욱 자신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그나마 평화를 향한 노력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었다고 말한다. 포화 속 우크라이나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바로 평화다.

그러나 이처럼 분주한 외교 활동 끝에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왔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스타노바야는 "러시아의 입장은 '우리 요구는 이러하니 받아들일래, 말래?'이다"면서 "'받아들이면 우리는 전쟁을 중단할 수 있고, 거부하면 너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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