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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렉스: 주택 혁명은 캐나다의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

2024.06.04
안젤라 장
Angela Jiang
고층 아파트에 살다 개조된 4세대용 연립 주택으로 이사 온 안젤라 장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안젤라 장은 고층 아파트에서 살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과거 토론토 시내 소재 아파트 68층에 살았던 장은 5년 전 저층 건물이 모여있는 지역의 포플렉스(4세대용 연립 주택)으로 이사했다.

포플렉스(fourplex)는 신축 건물일 수도, 기존 단독 주택을 개조한 형태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건물 하나가 개별 세대 4곳으로 나뉜 형태를 뜻한다

투자은행에 다니는 장은 “이곳 동네 분위기가 좀 더 주택가이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닐 필요도 없으며, 넓은 발코니에서 햇볕을 마음껏 쬘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포플렉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주택 형태가 캐나다 전역으로 확산하길 바란다. 캐나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포플렉스가 고층 아파트와 단독 주택 사이 “잃어버린 중간 단계”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올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합리적인 가격의 주택이 부족하다는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고자 60억캐나다달러(약 6조500억원)의 신규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포플렉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캐나다 연방 정부의 션 프레이저 주택장관은 지방 당국에 연방 정부로부터 주택 자금을 지원받기 위한 조건으로 포플렉스 허용을 내걸었다.

우선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와 같은 일부 주에선 이번 조치를 환영하고 나섰다. BC 주 정부는 인구 5000명 이상의 도시에선 포플렉스는 물론 5, 6세대용 연립 주택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온타리오주와 앨버타주 정부는 포플렉스 허용 강제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온타리오주의 더그 포드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지역을 잘 알고 있는 건 바로 우리다. 그리고 우린 (포플렉스를 짓기엔) 합리적이지 않은 곳에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반대 의견 뒤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캐나다 교외의 단독주택 문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주로 자리하고 있다.

신규 포플렉스
Tom Knezic
토론토의 신규 주택. 이처럼 건축가들은 포플렉스가 반드시 지루한 디자인의 건물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현재 온타리오주 토론토시는 포플렉스를 추진하고 있다. 토론토시의 주택 역사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간단히 요약하자면, 1929~2023년 토론토에선 신축 포플렉스 건설을 법적으로 금지했었다. 대신 토론토의 주택가 대부분은 단독 주택 및 반 단독주택으로 채워졌다.

캐나다 내 다른 영어권 지역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만 프랑스어권인 퀘벡주 몬트리올에선 포플렉스 등 소규모 아파트 건물을 비교적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눠진 주택: 잃어버린 중간 단계의 주택은 어떻게 토론토의 부동산 위기를 해결할까’의 저자 알렉스 보지코비치는 “토론토엔 단독 주택가를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 규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종의 계급적 차별입니다. 1910년대엔 아파트 같은 건물을 지으면 이민자와 같은 ‘잘못된’ 이웃을 끌어들인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단독) 주택과 아파트 건설 지역을 분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연방 정부의 압력 덕에 이러한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게 보지코비치의 설명이다.

“프레이저 장관은 자금 및 권한을 이용해 지방 정부들이 꼭 필요한 변화를 시행할 수 있도록 압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방 정부는 포플렉스야말로 저렴한 주택이 없는 위기를 즉각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캐나다 사회는 ‘포플렉스가 해답인가?’ 혹은 ‘이는 훨씬 더 큰 변화로 향하는 첫걸음인가?’를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고층 아파트
Getty Images
토론토시는 고층 아파트 혹은 단독주택에서 벗어나 공급되는 주택 형태를 다양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가 포플렉스 공급 확대를 추진한다고 해서, 부동산 개발업자나 건축 업체가 당장 건설에 나서는 건 아니다.

토론토 소재 부동산 시장 투자 업체 ‘슬레이트 에셋 매니지먼트’의 브랜든 도넬리 상무이사는 “자본력이 좋은 부동산 개발업자라면 확보한 투지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싶을 것”이라면서 “갖고 있는 땅에 150세대짜리 주택을 지을 수 있다면 왜 4세대짜리 프로젝트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겠냐”고 반문했다.

한편 캐나다 현지 신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프란시스 불라는 최근 은행 또한 포플렉스 건설에 익숙하지 않기에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은행은 지난 수십 년간 단독주택 혹은 콘크리트 고층 아파트 건설 프로젝트에 돈을 빌려줬다. 그런데 잃어버린 중간 형태의 새로운 주택을 개발한다면 이를 위한 새로운 종류의 금융 상품이 필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포플렉스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선 이러한 틈새시장과 맞는 틈새 유형의 개발업자들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톰 크네직
Tom Knezic
토론토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는 톰 크네직은 포플렉스가 저렴한 주택 공급에 유용하리라 본다

한편 ‘솔라리스 아키텍처’의 공동창립자인 톰 크네직은 현재 토론토에서 임대되고 있는 포플렉스 건물 하나를 설계했으며, 현재 건설 중인 포플렉스 4채도 그의 작품이다.

크네직은 포플렉스는 지루하게 생긴 건물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오히려 건축가로서 레이아웃과 디자인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건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인 가구를 위한 공간, 가족을 위한 공간 등 4 세대 모두 각기 다른 크기로 설계할 수 있다는 예시를 들었다.

아울러 크네직은 토론토가 밴쿠버가 보여준 “훌륭한 선례”를 따라 기존의 대형 단독주택을 분리형 아파트로 바꿔 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저는 포플렉스가 저렴한 주택 공급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포플렉스를 매력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 붐이 일어났다고 보긴 힘든 상황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토론토와 밴쿠버시에 접수된 포플렉스 건설 신청은 약 100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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