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유럽 내 여성 징병 논의 확대
4월 1일부터 덴마크 여성들은 만 18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군사 평가 센터에 출석하여 추첨 방식으로 번호를 뽑아야 한다.
이후 군 복무 지원자가 부족할 경우 이들이 뽑은 번호가 호출될 수도 있다. 번호가 낮을수록 징집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동안 덴마크에서는 남성만 병역 추첨 대상에 포함되었으나, 이제 처음으로 여성도 참여하게 된다.
이 같은 결정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2년 후인 2024년 내려진 것으로,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이미 유사한 조치에 나섰다.
지난 10년간 지원자 인원이 부족하지 않았기에 강제로 징집된 사례는 없었으나, 덴마크 정부가 군 복무 인력 확대를 원하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덴마크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징병제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4년 후 병역 추첨 대상이 될 이사벨라는 "나는 죽고 싶지 않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얻고 싶지도 않으며, 여성으로서 전장에서의 삶이 무섭다"고 말했다.
반면 군사 평가 센터에서 만난 사라(19)는 "전통적으로 남성들만 할 수 있다고 여겨온 분야에 여성들이 포함되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덴마크에서는 지난 1988년부터 여성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으며, 지난해 군 복무를 마친 인원 중 4분의 1이 여성이었다.
성 중립 군대
노르웨이는 지난 2013년 모든 시민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녀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유럽 최초로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했다.
스웨덴의 경우 2017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노르웨이의 뒤를 따랐으며, 네덜란드는 2020년 남성과 여성 모두를 징집 대상에 포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소집 명령에 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발적인 선택 사안이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향후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도 여성 징병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에스토니아 국방 대학 소속 엘레리 릴레마에 연구원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전환점이었다"면서 "(침공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라트비아의 안드리스 스프루즈 국방장관은 2028년부터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자고 주장하며, 여러 이유를 설명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침략국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포괄적 방어 역량을 크게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는 그는 "또한 우리 국민 모두가 국가 안보와 방위를 수호하는 데 있어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도록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원칙적으로, 나는 장관으로서 성 중립적 접근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떨어지는 출산율
하지만 징집 대상이 될 수 있는 젊은 남성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것 또한 문제다.
전체 인구가 200만 명도 안 되는 나라라면 태어나는 아이 한 명 한 명이 특히 소중하다. 라트비아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당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은 1.36명으로 떨어졌는데,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보통 2.1명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발트해 국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의 합계 출산율은 각각 1.31과 1.18명이다.
릴레마에 연구원은 인구 자료상으로 보면 발트 국가 내 여성 징병제 도입은 결국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이 문제는 2040년경에 도래할 것이다. 지난 2~3년간의 출생아 수가 너무 적은 상황에서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안보 위기 상황이 유지된다면 (군대를 운영할) 인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릴레마에 연구원은 자신의 모국인 에스토니아를 예로 들었다. 현재 에스토니아에서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청년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대상이 되는 연령대의 남성 인구 중 약 40%를 징집하고 있다.
징집 인원을 앞으로도 지금과 동일한 규모로 유지하려면 2040년에는 전체 남성 청년 중 약 90%를 징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릴레마에 연구원은 "모집 대상을 확대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리투아니아에서는 여성 징병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나, 라트비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발트 3국 모두 남성을 대상으로는 의무 복무 형태의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여성은 참여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러시아의 월경지인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의 경우 2026년부터 모든 남성을 대상으로 한 군사훈련을 재도입할 계획이며, 여성도 자원하여 참여할 수 있을 예정이다.
우크라이나의 예시
릴레마에 연구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투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느끼게 해준 계기였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군에서 활동하는 여성은 7만 명 이상이며, 이중 전선에 배치된 이들도 5000명에 달한다.
"(우크라이나는) 군에서 여성이 얼마나 필요한지, 국가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국민의 기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는 군사 인력이 부족함에도 여성 징병제를 말하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방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합쳐지며 NATO 회원국들은 올여름 헤이그에서 국방비 증액에 합의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더 이상 미국에 유럽 방어를 의존할 수 없으며, 자립성을 키워야 한다는 점 또한 인지하고 있다.
일례로 독일은 2026년 자발적 군 복무 제도 도입을 두고 논의 중이며, 프랑스는 기존의 자발적 군 복무 제도를 개편하여 전투 훈련 비중을 더 높이려 한다.
국가마다 군 복무의 성격과 기간은 다르며, 일부 국가는 징집병을 상비군 부대에 배치하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별도로 훈련시키기도 한다.
의무 복무에 대한 대중의 지지 역시 국가별로 다르다. 올해 5월 유럽외교협회(ECFR)가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독일, 폴란드에서는 대다수가 의무 병역제 부활을 강력히 지지하거나 지지했다.
여성 의무 병역에 대해서 덴마크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높지 않았으나, 발트 국가들에서는 이를 지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스프루즈 국방장관은 "물론 라트비아 사회도 이 문제에 관해 논의 중"이라면서 "대다수 라트비아 국민이 이에 대해 다소 신중한 입장"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라트비아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보다도 남성 징병을 재개한 역사가 짧다고 지적했다.
"라트비아에서는 2023년이 되어서야 징병제가 부활하였습니다. 시간이 좀 걸린 셈이죠."
여성의 안전
또 다른 문제는 인프라다. 대부분의 군대는 갑자기 많은 신병을 수용할 여력이 없다. 막사도 새로 짓고 교관을 새로 양성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 장비는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됐기에 여성 체형에 맞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군복과 배낭도 마련해야 한다.
군대 문화 및 군대라는 공간이 여성에게 안전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덴마크 여성 협회'의 루이즈 빈터 알리스 회장은 "덴마크 여성 참전용사 단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들은 덴마크 군대에서 여성으로 지내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여성들에게) 좋지 않은 환경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3년 덴마크 국방부의 조사에 따르면 군 복무 중인 덴마크 여성 중 20.3%가 지난 12개월 동안 원치 않는 성적 관심이나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국방부는 군대 내 피해 비율이 덴마크의 사회 전체 평균보다는 낮다고 설명하면서도 이를 근절하고자 계속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발트해 건너편 라트비아의 경우, 스프루즈 장관은 자국 군대는 자원해서 복무 중인 여성(현재 전체 병력 중 18% 차지)은 물론, 향후 징집될 가능성 있는 여성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전혀 위험한 곳이 아니라며 자신했다.
스프루즈 장관은 "(라트비아 군대는) 포용적인 곳"이라며 "현재 군대는 안전한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여성 징병제는 국제적으로 매우 드문 제도다. 2019년 '퓨 리서치 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보편적 병역 의무를 시행하는 국가는 이스라엘과 북한을 비롯하여 에리트레아, 말리, 모로코, 튀니지 등 아프리카 최소 4개국이다.
복무를 마친 남성과 여성은 이후 예비군으로 투입되는데, 이후 추가 훈련 소집 대상이 되거나, 실제 전쟁 발발 시 전투에 투입될 수 있다.
유럽 내에서는 여성 징병제는 물론 징병제 자체를 갑작스러운 논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릴레마에 연구원은 여전히 더디다고 말한다.
"덴마크는 매우 신속하게 결정을 내렸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는 그는 "하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말만 많을 뿐 행동이 없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