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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서 여자친구 살해한 한국인 남성... 반복되는 '교제살인' 왜?

1일 전
도쿄에서 한국인 여자친구를 살해한 한국인 남자친구 사건 현장
NHK
일본 도쿄에서 30대 한국인 남성이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공항에서 체포됐다. 사진은 일본 NHK방송 캡처본.

일본 도쿄에서 30대 한국인 남성 박모 씨가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검거됐다.

살해된 여성은 한국 국적의 40대 A씨로, 1일 NHK 등은 이날 오후 1시 30분쯤 도쿄 세타가야구 한 주택가에서 A씨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피해자의 목에는 자상으로 추정되는 상처가 발견됐으며,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경찰은 2, 30대로 보이는 검은색 옷차림의 남성이 현장에서 도주했다는 제보를 받고 곧바로 행방을 쫓았으며, 같은 날 하네다 공항에서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했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이 남성은 지난해 일본어 학습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나 올해 4월부터 교제 중이던 A씨를 만나기 위해 사흘 전 일본에 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사흘 전인 지난 달 29일 지역 내 경찰서를 찾아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뒤 문제가 생겼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를 보호시설로 옮긴 뒤, 박 씨에게 접근 금지 경고를 내렸다.

일본 현지 경찰은 '교제 살인'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한편 피의자 박 씨에 대한 얼굴, 실명, 국적, 나이 등 신상 정보는 일본 현지 언론의 보도 과정에서 모두 공개됐다. 일본은 체포된 피의자에 대한 언론의 자율적인 신상 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박 씨는 현재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다시 '교제살인' 범죄

'교제 살인’ 의대생 최모(25)씨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에서 검찰로 구속송치되고 있다
NEWS1
이별을 고하는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의대생 최모 씨가 검찰로 구속송치되고 있다

애인 혹은 전 애인에게 폭력을 당하는 교제 폭력 범죄 건수는 최근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을 통해 집계한 현황에 따르면 2022년 7만790건이었던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2023년 7만 7150건으로 증가했다. 다음 해인 2024년에는 8만 8379건으로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실제 피해 사례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2차 피해 및 보복 범죄 등을 우려한 일부 피해자들이 신고를 주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집계된 수치만으로도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보여주지만, 실제 피해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본다. 특히 폭행, 감금, 성폭력이나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경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살인미수를 포함한 살인 피의자 778명 중 71명이 현재 혹은 과거 애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29명은 목숨을 잃었고 52명은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 등 밀접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수가 181명이라고 밝혔다. 살인미수에 그쳐 가까스로 살아남은 여성들까지 포함하면 555명이다.

지난 7월 대전에서 발생한 교제 살인사건 피의자 장재원은 전 연인에게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2일 구속기소됐다.

이 외에도 경기도 화성 오피스텔 교제살인 사건과 강남 의대생 여자친구 살해 사건 등 교제살인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상다수의 '교제살인'은 이별을 통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방의 거절 의사에 대한 분노가 범행의 주 동력이었다는 점에서 최근에는 '거절 살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친밀한 관계 살인의 경우 '결별' 이후에 피해자가 살해당하는 특징을 보인다"며, "상대를 동등한 주체로 인식하기 보다는 소유물, 통제와 조종의 대상으로 여기는 가해자의 특성은 그와 같은 통제를 거절하는 시도인 결별 과정에서 피해자가 살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적 보호망은?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과 교제폭력사건 피해자 유가족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교제폭력피해자보호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NEWS1
작년 7월 '거제 교제폭력사건' 피해자의 어머니와 '당진 자매 교제살인' 피해자 아버지가 자리해 교제폭력피해자보호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처음으로 교제살인 범죄에 대한 경찰 전수 조사가 시작됐다. 교제살인 범죄 유형으로 경찰이 전수 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경찰은 범죄를 집계하는 과정에서 가정폭력처벌법상 명시되어있는 폭행·상해, 체포·감금·협박, 성폭력, 주거침입의 유형으로만 구분해오고, 살인 범죄는 별도로 취합하지 않았다.

경찰은 앞으로 교제 살인을 별도로 추려 범행의 전조, 결정적인 범행 원인, 처벌 수위 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지난해 5월 22대 국회가 시작된 이후 총 19건의 스토킹 처벌법·스토킹방지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이중 실제 제정까지 이어진 법안은 없다. 이들 법안은 모두 심사 단계에 그쳐있다.

현재 한국은 스토킹 범죄 처벌법, 스토킹 방지법을 통해 스토킹 범죄를 처벌하고 있으나, 이는 교제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지난해 1월부터 스토킹 행위자가 접근금지 잠정조치를 위반할 경우,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이 가능해졌다. 재범 가능성이 높은 가해자에게도 전자발찌 부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실시간 감독을 통해 대응하기엔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은 지난 8월 '보복 스토킹죄'를 신설해 계속해서 반복되는 스토킹 범죄에는 보복범죄 혐의에 준하는 가중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원래 형량인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보다 처벌 수위를 끌어올려 무조건 실형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처벌 수위만 높이는 방법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며 교제 폭력의 전조 증상에 해당하는 '강압적 통제'까지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강압적 통제 행위'란 '행방을 추적하고 감시하거나 타인과의 교류를 제한하는 등 피해자가 공포심을 느낄 정도로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국회 입법조사처는 작년 6월 이를 규율할 입법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여성가족부는 2025년 여성폭력방지정책 시행계획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의 범위를 규정하는 등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에 존재하는 처벌 공백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약을 내놓은 만큼 법 개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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