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CEO들과 중국 찾았지만…'빅딜' 거의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회담 마지막 날 일정이 시작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지금까지 우호적인 발언과 치밀하게 연출된 상징성은 이어지고 있지만, 뚜렷한 경제적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첫날에는 성대한 의전 행사와 주요 기업인들의 참석, 미중 관계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메시지가 이어졌지만, 포괄적인 무역 합의 돌파구나 대규모 기업 계약 발표는 거의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시 주석과 2시간 넘게 회담한 뒤 미중 관계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관계"라고 언급했다.
백악관은 이번 회담을 두고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민대회당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역대 최대 규모의 정상회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편 시 주석은 앞서 한국에서 열린 양국 간 무역 협상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하면서도,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잘못 다뤄질 경우 양국이 충돌하거나 심지어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과 무역
이번 방문은 성과만큼이나 연출된 이미지가 중요했던 일정이었다. 가장 주목받은 장면 중 하나는 미 대통령의 전용기 에어포스원이 베이징에 착륙했을 때 나왔다.
일론 머스크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고위 각료들보다 먼저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렸다. 이번 방문이 무역 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머스크를 비롯해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 역시 환영식 내내 트럼프 대통령 가까이에 자리했다.
이 같은 상징성은 분명했다. 머스크와 황 CEO는 전기차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등 미중 경제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두 사람 모두 중국 시장에 깊게 노출돼 있다. 테슬라는 상하이 기가팩토리와 중국 소비자 시장 의존도가 높고, 엔비디아의 반도체 칩은 글로벌 AI 경쟁의 중심에 있는 동시에 중국의 첨단 컴퓨팅 접근을 제한하려는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황 CEO는 애초 대표단 명단에 없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에 따라 AI와 반도체 접근 문제가 예상보다 회담에서 더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이 사람들과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보잉 최고경영자 켈리 오트버그 역시 미국 대표단에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인터뷰에서 중국이 보잉 항공기 200대를 주문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미국산 상업용 항공기 구매로는 거의 10년 만의 일이다.
다만 이는 많은 분석가들의 예상에는 미치지 못하는 규모였다. 관련 발언이 방송된 뒤 보잉 주가는 4% 넘게 하락했다.
BBC는 이에 대한 보잉 측의 입장을 요청한 상태다.
큰 합의 없었지만 무역 휴전 이어져
상징적인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에서는 주요 무역 합의나 구조적인 협정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양측은 지난 10월 체결된 무역 휴전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인상을 보류했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일부 완화한 바 있다.
백악관은 양국 정상이 관세 협상을 다시 시작하지 않고도 양국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무역위원회(Board of Trade)'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측 무역 협상을 이끌고 있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도 CNBC와의 사전 녹화 인터뷰에서 향후 투자 지원을 위한 메커니즘 마련과 관련해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조치들이 실제로 완전히 작동하기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경고했다.
-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향후 미-중 관계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 '힘, 무력, 권력'이 지배하는 세계를 장악하려는 미국·중국·러시아
- 글로벌 대외 원조의 미래 … 미국이 나가고, 중국이 차지하나?
시장 개방과 협력
백악관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는 미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접근 확대와 중국의 대미 투자 확대 문제도 논의됐다.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과 에너지 제품 구매를 늘리겠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미국 농민들은 중국 시장에서 대두와 쇠고기, 가금류 등에 대한 접근 확대를 요구해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농산물 분야에서 새로운 대규모 돌파구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낮추면서, 일부 대두 구매 약속은 이전 합의에서 이미 다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한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중국이 확대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이후 농업 관련 합의가 올해 안에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미국 기업인들에게 중국의 "문은 더 넓게 열릴 것"이라며 미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더 넓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또 무역과 농업, 보건의료, 관광, 법 집행 분야에서 협력 확대를 촉구하면서 양국 관계를 "상호 호혜적"이며 "윈윈 결과를 가져오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 기업들 입장에서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인 동시에 규제와 복잡한 행정 절차,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업 환경이 까다로운 곳이기도 하다.
가장 '민감한' 쟁점
이번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가장 뚜렷한 전환점 중 하나는 중국이 이제 대만 문제를 미국과의 전반적인 경제 관계와 훨씬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년간 이어진 무역 협상 과정에서 대만 문제는 미중 간 여러 갈등 요소 가운데 하나로 다뤄져 왔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과의 협력, 미국-대만 무역 관계,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나온 중국 측 메시지는 대만 문제가 점점 미중 무역 관계의 조건처럼 규정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시 주석은 양국이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성"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 설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대만 문제는 여전히 가장 민감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매체에 따르면 시 주석은 회담에서 "대만 문제는 미중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잘못 다룰 경우 양국이 충돌하거나 심지어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남은 갈등 요소
기술 분야는 여전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가장 큰 갈등 요소다.
중국의 첨단 인공지능(AI) 역량 확보를 제한하기 위해 미국이 시행 중인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통제 조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중국은 첨단 기술 접근 확대를 계속 요구하는 한편, 자국 산업 발전을 억제하려는 시도라고 보고 미국 측 조치를 비판하고 있다.
AI는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상회담 첫날 발표문에서는 관련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대표단이 정상회담에서 AI 가드레일(안전장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AI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선트 장관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은 혁신을 억누르는 것"이라며 "최대한의 혁신과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이란 문제와 국제 유가 안정과 관련한 중국의 협력도 기대하고 있었다.
유가 변동성과 공급망 차질이 반복되면서 중국의 수입 비용은 증가했고, 이는 세계 각국의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영향력을 활용해 세계 주요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흐름 안정에 이란이 협조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중국 측 발표문에서도 중동 문제가 논의됐다고 언급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15일 저녁 베이징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오는 9월 24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양측은 해당 정상회담에 앞서 추가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이번 회담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대규모 무역 합의를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이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