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100mm 극한 호우, 이제 일상이 되나
"시간당 100mm의 호우는 정말 흔하지 않은데, 거의 매년 오고 있어요."
기후학자 포스텍 민승기 교수의 눈에도 거의 매년 반복되는 시간당 100mm의 폭우는 심상치 않다.
지난 17일 오전 의정부 신곡동엔 시간당 103mm의 비가, 파주시엔 시간당 101mm의 비가 내렸다. 앞선 10일 군산 어청도엔 기상 관측 이래 최대인 시간당 145.5mm의 비가 내렸다.
확률적으로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한 번 내려야 할 비가 이처럼 반복되면서 한반도의 강우 양상이 바뀐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200년에 한 번, 재작년엔 500년에 한 번 올 비 내려
이번주 전국을 덮친 집중 호우의 직접적인 원인은 저기압이다.
기상청은 서해에서 유입된 저기압이 장마전선과 만나 많은 비를 뿌렸다고 밝혔다.
공주대 대기과학과 장은철 교수 역시 이번 호우의 원인을 "중국, 몽골 지역에서 발생한 저기압"이라며, 이 저기압이 이번에 "매우 작고 강하게 발달해 북태평양 고기압과 부딪혀 많은 비를 뿌렸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거대한 저기압 끝쪽으로 튀어나온 약 20~300km 정도의 중규모 저기압이 있는데, 이 저기압이 장마전선과 만나 17~18일 사이 수도권과 충청에 많은 비를 뿌렸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그러면서 "이런 저기압이 최근 집중호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그 결과 "총량은 비슷해도 짧은 시간에 확 내리고 끝나버리는 강우 형태가 꾸준히 늘어왔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의 말처럼 짧은 기간에 많은 비를 뿌리는 강우 경향이 이제는 여름철 강우의 일반적인 패턴이 되고 있다.
기상청 우진규 통보관은 "군산 지역에 내린 시간 당 145.5mm라는 강수량은 이 지역 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200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정도의 양"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난 2022년 8월 서울 강남 지역을 잠기게 한 폭우의 시간당 최대 강수량인 141mm은, "서울 지역을 기준으로 했을 때 500년에 한 번 내릴 수 있는 양"이라고 덧붙였다.
수백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비가 2년 동안 두 번이 내린 셈이다.
기상청은 지난해부터 ‘호우’, ‘집중호우’ 등과 대비되는 ‘극한 호우’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극한 호우’란 1시간 누적 강수량이 50mm 이상, 3시간 누적 강수량 90mm 이상인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거나 1시간 누적 강수량이 72mm 이상인 경우를 이른다.
과연 그 원인은 뭘까.
극한 호우가 일상이 된 원인은?
극한 호우가 왜 잦아졌냐는 질문에 대한 학계의 대답은 '아직 모른다'이다.
장 교수는 "현재의 관측 수준으로는 상공에서 대기가 정확히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입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워낙에 다양한 변수가 있어 원인 규명이 쉽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해수면 온도 상승이 원인 중 하나일 거라고는 보고 있다"고 말한다.
"서해안은 온난화 속도가 전 지구 해역 중에서도 굉장히 빠른 쪽에 들어가요. 직접적으로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서해의 표층 수온은 지난 1968년부터 2022년까지 약 1.19도가 올랐다. 같은 기간 전 지구 평균 표층 수온이 약 0.52상승한 데 비해 두 배 넘게 오른 셈이다.
포스텍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는 "시간당 100mm의 호우는 정말 흔하지 않은 건데, 거의 매년 이런 호우가 내린다는 건 우연 같지는 않다"며, "온난화가 대기 순환 패턴도 건드리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권위적인 기후 관련 학술지 ‘저널 오브 클라이미트'의 편집위원인 민 교수는 최근의 극한 호우는 "단순히 온도가 올라가서 수증기가 늘어난 걸로 설명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지구 평균 온도가 1도가 올라가면 대기 중 수증기의 양은 평균 7%가 증가한다는 걸 기반으로 계산을 한다"면서, "그러나 현재는 그런 식의 계산을 벗어난 정도로 강우 형태가 크게 변했다"고 분석했다.
"3~4년 전만 해도 이렇게 시간당 100mm씩 내리는 비는 잘 없었는데, 그 사이에 전지구 온도가 3~4도가 올라간 건 아니잖아요."
미래를 미리 경험하고 있다?
민 교수는 "먼 미래가 되면 기상현상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예측했는데, 비슷한 일들이 지금 생기고 있으니까 학계에서도 뭘 놓치고 있었는지를 고민하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희가 놓치고 있었던 배경 중 하나를 최근 몇 년간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진 바다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강하게 영향을 미친 엘니뇨로 인해 전지구 평균 해수면 온도는 지난해 3월부터 역대 최고치를 계속해서 갱신해오다 이번 달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전년도보다 낮아졌다.
민 교수는 "뜨겁게 유지된 바다가 역할을 하면서 조금 먼 미래의 상태가 온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기후변화가 지금처럼 진행됐을 때 "지금과 같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비가 내리는 경향성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극한 호우' 대비는 돼있나
시간당 100mm 이상의 비가 일상이 되면 수해를 대비하는 기준 자체도 높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3월 행안전부는 도시지역 소하천 설계 기준을 기존 100년 빈도의 홍수에서, 200년 빈도의 홍수를 대비할 수준으로 2배 상향했다.
이처럼 변화하는 강우패턴에 대해 각계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비를 퍼붓는 최근의 강우 패턴을 대비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온다.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의 백승주 교수는 "앞으로는 여태까지 접해보지 않은 기후 상황을 계속 갱신하게 될 것"이라며 "일반적인 설계 기준처럼 최근 몇 년의 발생 빈도를 기준으로 한다든지 하는 방식은 계속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백 교수는 그러면서 상습 침수 지역에 대해서는 보다 과감하고 높은 기준의 방재 조건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진국들은 기존의 하수 관로로 늘어나는 비를 감당을 못 하니까 지하에 대규모 배수터널과 배수지 등을 건설했다"면서 "한국은 이런 시설이 아직 서울 신월동에 한 곳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22년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이후 서울시는 상습 침수 지역에 대심도 빗물터널 6개를 더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고금리와 건설경기 불황 등으로 아직 한 곳도 착공을 못 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