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위기 시 유용한 준비물 5가지는?

전기는 끊겼고, 그 어떤 전자기기도 작동하지 않는다. 이날 하루를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지난 28일(현지시간)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에서 역사상 최악의 정전 사태가 발생하면서 주민 수백만 명은 이 같은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BBC는 전기 없는 하루를 보낸 주민들에게 어떤 물품이 도움이 되거나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들어보았다.
현금

휴대폰 NFC 혹은 카드 결제가 일반화된 세상에서 정전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여러 도시에서는 현금 자동 입출금기(작동을 멈춘 기기도 있었다)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상점 내 카드 결제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에드 로우(26)는 "정전 초기만 해도 카드 결제로 커피를 살 수 있었으나, 이후에는 보유한 현금이 없어 아무것도 살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여전히 영업 중인 식당을 찾아도 현금 결제만 가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드리드 주민인 그레이스 오레어리(32)와 어머니는 동네 가게에서 와인을 사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동전 개수를 일일이 세어야 했다.
"알고 보니 현금이 최고더군요."
배우로 활동하는 제이미 조르지오(28)의 경우 마침 현금을 갖고 있어 음식 등 필수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마드리드는 꽤 혼란스러웠습니다. 지하철도 운영을 멈추었고, 현금을 인출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와 달리 룸메이트는 현금이 없어서 제게 돈을 빌려 필수품을 샀습니다."
라디오
정전으로 인해 소식도 원활히 전달되지 못했다. 시민들은 인터넷도, 메신저앱도, 전화도, TV도 없는 하루를 보냈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다니엘 클레그(42)는 "전면적인 통신 두절이 가장 혼란함과 걱정을 가중시켰다 … 정전의 원인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이웃에게서 들은 소식을 종합해보며 상황을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보가 부족한 탓에 클레그가 여전히 하늘길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하늘을 쳐다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편 시골 지역에 사는 시그프리드와 크리스티네 부슈슈루터 부부는 전화기도 쓸 수 없고 전기도 끊기자 오래된 태엽식 라디오를 꺼냈다. 그 덕분에 지역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크리스티네(82)는 "(태엽을) 계속 돌려야 했다"고 했다.
"정말 기이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전쟁 중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시절 부모님이 소식을 듣고자 노력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부슈슈루터 부부는 이번 정전으로 인해 앞으로 이러한 라디오 수요가 급증하리라 전망했다.
실제로 클레그 또한 라디오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라디오야말로 기본적으로 통신을 하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필수품인데, 이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통조림 식품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는 물론 일부 가스레인지와 오븐도 모두 전기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전기가 끊긴 28일, 전기 없이 가열하거나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을 찾는 이들이 급증했다.
슈퍼마켓에 너도나도 몰려와 필수품을 사재기하는 모습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연상시켰다.
조르지오는 "혹시 몰라 참치 등 통조림 식품을 사두었다"고 했다.
"다행히 정전은 하루 만에 끝이 났습니다. 제가 사둔 음식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 보관이 용이해서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페인 남동부 포트로나에 사는 레슬리 엘더는 "가열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저녁으로 햄과 치즈를 먹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식을 데울만한 휴대용 가스버너가 있었다면 좋았을 뻔했다고 덧붙였다.
촛불 및 손전등

어둠이 몰려오자 이베리아반도 전역의 주민들은 촛불로 집 안을 밝혔다.
스페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 사는 리차드는 밤이 되어도 단 한 개의 가로등도 켜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리차드는 "보행자들은 손전등으로 길을 찾았다. 특히 나는 중앙분리대가 있는 제법 큰 도로 옆에 살고 있기에 이토록 완전히 어두운 창밖의 풍경은 현실같지 않았다"고 했다.
"저는 취미로 양초를 만듭니다. 그래서 운이 좋게도 여분의 양초가 있어 어둠에도 불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사라 백스터는 심지어 촛불로 음식을 데워먹었다고 했다. "콩과 쌀도 데우고, 물도 끓여 감자도 먹었다"는 것이다.
"아파트 안에서 프로판 가스버너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안전하니까요."
그러나 촛불 또한 화재 위험이 있다.
보조배터리
전기가 끊기자 사람들은 배터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마드리드에서는 보조배터리 상점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마침 백스터는 10시간가량 이어진 정전 위기에서도 태양광 충전기를 통해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었고, 이웃 어르신의 휴대전화도 충전시켜주었다.
엘더는 "이북 리더기도 방전되고, TV도 없고, 휴대전화로 스크래블 퍼즐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면서 "그래서 책 몇 권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인터넷과 전자기기에 접속할 수 없음에 안도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다.
로우는 "모든 이들이 기술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번 정전은) 독립적으로 사는 삶을 상기시켜주었다"고 했다.
로우의 룸메이트인 한나 스타이너(23) 또한 "항상 모든 사람과 연결될 필요는 없다"면서 "나는 (정전 중)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냈다"고 했다.
포르투갈 중부 레이리아에 사는 사라 프란시스코(24)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의 습관에 대해 더 많이 인식하고 의식하게 되었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