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이슬람교 성직자', 남아공서 총에 맞아 숨져

세계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이맘(이슬람 성직자)으로서 선구적인 인물이었던 무신 헨드릭스(57)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이맘(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 헨드릭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동성애자, 소외된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사원을 운영했다. 그러던 지난 15일 아침, 남부 도시 게베하 근처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갑작스럽게 공격당했다.
현지 경찰은 성명서를 통해 "얼굴을 가린 용의자 2명이 차량에서 내려 (헨드릭스가 타고 있던) 차량을 향해 총탄 여러 발을 발사했다"고 설명했다.
헨드릭스의 사망 소식에 성소수자 등 여러 공동체가 충격을 받은 가운데 전 세계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협회(ILGA)'의 전무이사 줄리아 에르트는 당국에 "우리가 혐오 범죄로 의심하는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에르트 이사는 "헨드릭스는 남아공 및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과 화해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멘토가 되어주었던 인물"이라면서 "그의 삶은 공동체 간 연대를 통해 모든 이들이 삶에서 어떤 치유를 누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 그 자체"라고 애도했다.
헨드릭스는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은 뒤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이번 사건의 세부사항은 SNS에 올라온 CCTV 영상을 통해 밝혀졌다.
영상에는 헨드릭스가 타고 있던 차량이 커브길에서 갑자기 제지당하고 가로막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경찰에 따르면 헨드릭스는 당시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해당 CCTV 영상은 촬영 각도 상 도로 한쪽에서 일어난 일만을 담고 있다. 괴한 1명이 차량에서 뛰어내려 다른 차량으로 달려간 뒤 뒷좌석 창문을 통해 여러 번 총기를 발사한다.
케이프타운의 윈버그 교외에 있는 '마스지드 알 구르바' 모스크를 운영하는 헨드릭스의 '알 구르바 재단'은 그가 15일 아침 표적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해당 재단의 압둘무기트 피터슨 의장은 왓츠앱 그룹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인내하며 기다려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헨드릭의 가족을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헨드릭은 전통적인 이슬람 해석에 도전하는 한편 자비롭고 포용적인 신앙을 옹호한 인물이다.
사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제정된 남아공의 헌법은 전세계 최초로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하지 못하도록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공동체가 번성하고 있는 곳임에도 여전히 동성애자들은 차별과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남아공은 전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헨드릭스는 1996년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이는 남아공은 물론 여러 이슬람 공동체에 큰 충격이었다.
같은 해 포용적인 '마스지드 알 구르바' 모스크를 설립한 그는 자신의 신앙과 성 정체성을 조화시키려는 성소수자 이슬람교도들을 지원하고, 이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고자 '더 이너서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아울러 헨드릭스는 2022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더 래디컬(The Radical)'의 주인공으로, 해당 작품을 통해 진정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 더 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처럼 헨드릭스는 종교, 종파 간 대화의 중요성과 종교 공동체 내 성소수자인들이 겪는 정신 건강 문제 및 트라우마 해결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했다.
지난해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ILGA 세계 회의'에서는 "종교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연설하기도 했다.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기독교 목사인 지드 맥컬레이는 헨드릭스의 죽음에 대해 "정말 가슴이 아프다"며 생전 그가 보여준 용기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영국계 나이지리아인으로, 성소수자 권리 운동가이기도 한 맥컬레이 목사는 동성 간 연인 관계 또는 공개적인 애정 표현 자체가 불법인 나이지리아의 동성애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하우스 오브 레인보우'를 운영하고 있다.
맥컬레이 목사는 "당신의 리더십, 용기, 포용적인 신앙 공동체에 대한 확고한 헌신은 지워지지 않은 흔적을 남겼다"며 추모했다.
나이지리아에 사는 동성애자 이슬람교도인 사디크 라왈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헨드릭스는 "나는 동성애자 이맘이다"라는 발언을 통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종교적 극단주의 등이 존재하는 아프리카, 특히 나이지리아의 많은 성소수자 이슬람교도의 멘토였다"는 것이다.
"저는 아직도 충격과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