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세번 겪더니...과거와 달라진 국회 모습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킨 것은 헌정사상 세 번째다. 여야는 이날 과거와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 속에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이날 개표 결과 재적의원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탄핵안이 가결됐다.
이날 탄핵안을 처리한 국회 본회의장 분위기는 과거에 비해 매우 차분한 분위기였다. 여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의 제안설명을 들었고, 야유나 고성을 지르는 의원도 없었다.
여야 의원들은 순서대로 표결에 참여하며 투표 결과를 기다렸다.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야당 의원들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 반면 여당 의원들은 초조한 모습이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탄핵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하자 일부 야당 의원들은 환호했고, 여당 의원들은 예상했다는 듯 조용히 퇴장했다.
과거 두 차례의 탄핵안 처리에 비해 국회 본회의장은 매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세번의 탄핵...달라진 국회
앞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바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며 육탄전을 벌이는가 하면 일부 의원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는 의원도 있었다.
당시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것은 노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지지를 공개적으로 요청해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휘말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재적 의원 271명 중 195명이 투표에 참여,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위법 행위는 인정하면서도 파면 사유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번째 탄핵의 주인공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의 논란에 휘말렸고, 국회는 재적 의원 300명 중 234명이 찬성해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는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방청권을 받아 본회의장에 들어온 20여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탄핵소추안 가결이 선포되자 "촛불국민의 승리"라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재판관 8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탄핵안을 인용,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과거에 비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통과된 이유는 윤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국민주권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 등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비상계엄'으로 적시됐다는 점, 탄핵에 찬성하겠다고 밝힌 여당 의원들이 늘어나면서 탄핵 가결이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점, 그리고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취재진 외에 참관단이 거의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날 국회는 경내에 취재진과 의원, 보좌진 등 국회 관계자 외에 외부인의 출입을 전면 봉쇄했다.
여당서 최소 12표 찬성
이날 탄핵안이 가결된 결정적인 이유는 여당 내 일부 의원들이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총 192석의 범야권이 전원 출석해 찬성표를 행사했다면 108석의 국민의힘에서 12명 이상이 탄핵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 7일 첫 번째 탄핵안이 여당 의원들의 불참에 따른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된 바 있다.
당시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 당론과 표결 집단 불참을 결정하며 1차 탄핵안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탄핵 찬성 및 표결 참여 의사를 밝힌 의원이 늘어나면서 당내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
전날까지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힌 의원은 안철수 김예지 조경태 김상욱 김재섭 진종오 한지아 등 7명이었다.
여기에다 공개적인 입장 표명 없이 '찬성'으로 마음을 정한 의원들이 많아지면서 대통령 탄핵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게 됐다.
앞서 국민의힘은 본회의 개회 직전까지 의원총회를 열고 표결에 대한 당론을 논의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에게 탄핵 표결에는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요동치는 국회...정국은 어디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외교·국방·행정의 수반인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됐다. 이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한 총리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직후 공직자들을 향해 "국민들께서 불안해하시거나 사회질서가 어지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긴급지시를 내렸다.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의 최종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결정하게 됐다. 헌재는 최장 180일 동안의 심리에 착수한다. 이번 사례의 경우 과거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헌재의 결정이 나올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인 상태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정국은 또 한번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단일대오를 유지해온 더불어민주당은 탄핵 정국 주도권을 쥐고 헌재를 향한 '탄핵안 인용' 여론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탄핵안 가결 이후 국회 앞에서 진행 중인 탄핵 촉구 범국민국민대회장 연단에 올라 "1차전의 승리를 축하드리고,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대표는 특히 "이제 겨우 작은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이고, 우리 앞에 더 크고 험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동훈 대표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진행된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의 결과를 대단히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집권 여당 대표로서 국민과 함께 잘못을 바로잡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강했다.
한 대표는 '당대표직을 사퇴하느냐'는 질문에는 "저는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계파갈등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친윤석열계 의원들은 한동훈 대표를 향해 탄핵 정국에 대한 책임론을 물어 대표직 사퇴를 압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장동혁·김민전·진종오·인요한 최고위원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