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가 만난 윤석열의 친구, 측근, 정치 보좌관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군사적인 정권 장악 사태가 일어나리라 예상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K-드라마와 기술 혁신으로 전 세계의 감탄을 사던 평화롭고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래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에 정권 장악을 명령하자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평범한 한국인부터 전 세계 지도자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인가?
윤 전 대통령은 국민과 군, 국회의원들의 저항을 과소평가했다. 그는 계엄령을 선포한 지 불과 6시간 만에 이를 취소했다.
그리고 4월 4일,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했다고 판단해 탄핵을 인용했다.
한때 옳고 그름에 대한 신념으로 유명했던 성공적이고 원칙주의적인 검사였던 그가 어떻게 국가를 전복하고 국가의 이미지를 훼손하며, 자기 커리어를 통째로 파괴한 결정인 권위주의적인 정권 장악을 꿈꾸게 되었는지 이해하고자 BBC는 친구, 측근, 정치 보좌관 등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비상계엄 사태 몇 주 뒤 만난 이철우 씨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어릴 적부터 "승리에 집착하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이 씨는 그의 오랜 친구다.
"한 번 무언가를 결정하면 아주 극단적일 정도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어요."
이 씨와 윤 전 대통령은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 두 사람은 윤 전 대통령이 검사가 되기 전까지 함께 법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이 씨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학교에서도 가장 덩치가 커서 다른 친구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늘 뒷자리에 앉았던 학생이었다.
그러면서 이 씨는 그에 대해 인기도 많았고 똑똑했다면서, 윤 전 대통령이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통과했기에 학업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반박하고 싶어 했다.

윤 전 대통령이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는 한국의 군부 독재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계엄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군부가 광주의 시위대를 학살하자 온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분노한 학생들은 거리로 나섰으나, 이 씨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그리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씨는 "그는 학생 운동이나 정치에는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면서도 "정의에 대한 신념은 유독 강했다"고 기억했다.
어느 날 이 씨는 교내에서 걷다 한 여학생이 사복 경찰에게 심문받는 모습을 목격했다. 함께 있던 윤 전 대통령은 곧장 경찰들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워낙 그 친구가 덩치도 크고, 분노에 휩싸인 상태였기에 경찰관들이 겁을 먹었다. 거의 도망치다시피 물러났다"는 이 씨는 "그 친구 성질은 억제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이 씨는 어느새 자신이 친구의 성질을 받아주고 있음을 느낀다.
윤 전 대통령은 검사로 재직하며 옳고 그름에 대한 본능을 거의 강박적으로 따르며,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더욱 굳혔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이 씨는 친구의 수사가 불필요하게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우려하게 되었다. 전화로 이같은 우려를 전했으나, 윤 대통령은 분노에 휩싸여 "전화기를 멀리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 무렵 윤 전 대통령은 2013년 상사의 명령에 불복해 국정원의 부정부패를 수사하며 이미 유명해진 상태였다. 정직 처분을 받았으나, 당시 윤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기도 했던 이 씨에 따르면 대중은 그를 정치적 압력에 저항하는 용감한 인물로 바라봤다.
국정감사 증인 자격으로 나선 윤 전 대통령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윤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구속하면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났고, 그 결과 좌파 진영의 호감을 사게 된다.
좌파 성향의 당시 정부에서 검찰총장직을 맡게 된 것도 이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비위를 맞추기는커녕 행정부의 장관 중 하나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그때 이 씨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경고했고, 윤 전 대통령은 크게 분노했다. 이후 두 사람은 1년 넘게 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끈질기면서도 당파를 초월한 태도를 바탕으로윤 전 대통령은 지지율을 쌓았다.
윤 전 대통령과는 친구 사이로 익명을 요구한 신 씨는 "상사가 시키는 일을 그대로 하기보다는 옳은 일을 추구하는 인물이었기에 그를 지지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을 '형님'이라며 가깝게 부르는 신 씨는 그는 부유하고 힘 있는 집안과 결혼해 영향력을 행사했던 당시의 많은 검사들과는 달랐다고 했다.
그 후 정부를 수사하면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택한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치권 양쪽 모두에서 영웅과 악당이 되었고,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대선 출마 결심은 절대 쉽지 않았다는 게 신 씨의 설명이다.
두 사람은 정기적으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짰다.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인맥이 약하다는 점이 고민이었다.
"평생 정치인으로 살아왔다면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하지만 형님은 자신이 매우 외로운 대통령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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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로 기울다
한편 과거 윤 전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로 활동했던 김근식 씨는 계엄령 이후 만난 자리에서 "그를 우리의 후보로 선택한 것을 크게 후회한다"고 했다.
처음엔 법을 대하는 윤 전 대통령의 원칙주의적인 모습에 매료되었다는 김 씨는 이내 우려가 커졌다고 회상했다.
"우리의 조언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했죠. 정말 고집불통이었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함께 술을 마시러 간 친구들로부터 조언을 듣기를 선호하며 사석에서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곤 했다.
"우리는 계속 그가 저지른 일들을 수습해야만 했습니다."
이렇듯 우려할 만한 신호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은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김 씨는 "우리도 그가 위험 요소라는 걸 알았으나,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당의 지지를 받은 이후 윤 전 대통령의 정치 성향은 급격히 우파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에 따르면 극우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몰려들어 "그의 머릿속에 생각을 심어두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이 북한과 관련 있다고 믿으며, 이들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신 씨는 "그가 변해가는 모습에 너무 슬펐다"면서 "그는 이기고 싶었고, 주변에서는 그릇된 조언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자신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가며 윤 대통령의 학창 친구인 이 씨는 두려워졌다.
"그는 두루두루 지지를 받으며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저는 친구가 이 나라를 통합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빠르게 우파로 기울었고, 거의 매일같이 지지율이 떨어졌습니다."
이 씨가 생각하는 문제는 바로 극우파들이 광적으로 윤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지를 잃어갈수록 이러한 충성파들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고, 더 우파로 기울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자멸의 악순환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한국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인 0.7%p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친구의 승리를 바라본 이 씨는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방향에 대해 걱정하며 당분간 관계를 끊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임기를 마친 뒤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검찰 같은 대통령
취임 시점에서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가장 오래된 친구는 물론 여러 온건파 유권자들까지 멀리하게 되었고. 결국 의회 내 다수당으로 강력한 야당과 충돌은 예고되어 있었다.
그는 검사로서의 본능을 정치에 적용했다. 그러나 그를 강력한 검사로 만든 바로 그 특성들이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길을 방해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보좌관은 "보통 경험이 없는 정치인들은 보좌진의 말을 많이 듣지만, 윤 대통령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싶어 했다"고 했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했던 이 보좌관은 윤 전 대통령이 "큰 소리로 강력하게" 주장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다른 의견을 내기 "불편해졌다"고 회상했다.
대통령 취임 초기, 보좌진 대부분은 대통령에게 야당 지도자와 마주 앉아 이견을 해소하고 효과적으로 국가를 경영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득했으나, 윤 전 대통령은 거절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인 이재명 대표를 범죄자로 여겼습니다."
대신 그는 "야당과 정면으로 싸우라"는 청와대 내 소수파의 편에 섰다.
대화를 촉구하는 사람들은 떠나거나 밀려났고, 어느새 윤 전 대통령 주변에는 그에게 동의하거나, 목소리를 내기에는 두려운 말단 관료들만이 남게 되었다.

이렇듯 강경한 리더십으로 그는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유권자들의 호감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인기 없는 정책들을 밀어붙였고, 사치스러운 선물을 받아 대중의 반감을 샀던 아내에 대해서도 사과하기 거부했다.
친구인 신 씨는 선거 운동 초기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으라고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다른 이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즉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신 씨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대중에게 영합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될까 봐 걱정했고, 사람들이 결국에는 자신이 잘하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임기 시작 2년 뒤, 여당은 총선에서 참패했고, 야당은 더 확실하게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의제를 실현할 수 없게 된 채 꼼짝 못 하게 되었다.
신 씨는 "대중의 인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지지율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오만하다"며 이점이야말로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미있고 좋아할 만한 사람입니다. 인기 있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죠."
야당을 처벌할 수단
이상하게도 윤 전 대통령은 여당의 선거 패배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국민의힘 소속이자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였던 인요한(존 린턴) 의원은 "윤 대통령은 자신은 여전히 행정 명령을 내릴 수 있고,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며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여러 증언에 따르면 그의 계엄령 구상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이 무렵 윤 전 대통령은 영향력 있는 극우 유튜버들이 퍼뜨리는 근거 없는 음모론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며 이에 완전히 몰입한 듯 보였다. 야당이 북한으로부터 또는 적어도 북한 정권을 우상화하는 이들의 지령을 받고 있다고 믿을 정도였으나, 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인 의원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야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거듭해서 들었으며, 한번은 야당을 중국 공산당과 비교하기도 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만약 야당이 집권하면 한국이 권위주의적 공산주의 국가로 변하고, 결국 파산할 것이라 믿었다.
"적어도 15~20번은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야당이 강해질수록 윤 전 대통령은 의회의 결정을 막고자 대통령 거부권을 이용하며 더욱더 고집을 부렸다. 이에 국회는 정부 예산을 삭감하고, 전례 없는 수준의 정부 각료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였으며, 영부인을 부정부패 혐의로 수사하고자 했다.
인 의원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격분"하며 "저들이 나와 이 정부를 끌어내리고 우리 민주주의를 끝장내려고 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12월 3일, 결국 그는 폭발했다.

인 의원은 "윤 대통령은 계엄령을 야당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들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머뭇거리지 않는다"면서 윤 대통령이 이같은 계획을 사전에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잘못된 결정이었고, 윤 대통령은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진심으로 국익을 생각해 행동했다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학창 친구인 이 씨 또한 "그는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망상을 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동정할 수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했기 때문"이라며 간접적으로 이에 동의했다.
신 씨 또한 윤 전 대통령은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갔던 것도 있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다며 말을 보탰다.
"그는 30년간의 검사 시절 내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엄 선포는 오직 윤석열만이 할만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