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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된 미국의 우크라이나 종전 계획…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은?

5시간 전
포크롭스크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포병들이 그물망 아래 안개 낀 하늘을 배경으로 포를 발사하고 있다
Marharyta Fal/Frontliner/Getty Images

미국이 작성한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정' 초안이 광범위하게 유출됐다. 이 문건에는 현재 우크라이나 통제하에 있는 동부 돈바스 산업 지역 일부를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통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신 버전 초안에는 우크라이나 군 병력을 60만 명 규모로 감축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문건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누가 가장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일까.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초안은 총 28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우크라이나가 수용 가능한 내용도 일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상당수 조항은 모호하거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문건은 먼저 우크라이나의 주권이 "확인될 것"이라고 명시한다.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유럽 간 "전면적·완전한 불가침 협정", 키이우에 대한 "강력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안보 보장", 그리고 100일 이내 조기 총선 실시 요구가 포함돼 있다.

만약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강력하고 조정된 군사 대응", 그에 따른 제재 복원과 협정 파기가 제안된다.

우크라이나는 계엄령 상태라 현재로서는 선거가 불가능하지만, 이론적으로는 협정 체결 시 실시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안보 보장과 관련해 누가 보장을 담당하는지, 그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집단방위체제인 제5조 조항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가 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더 강한 약속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영토 이양과 군 감축

가장 논란이 큰 조항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미점령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넘기도록 규정한 부분과 군 규모 감축이다.

초안은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우크라이나군은 현재 통제하고 있는 도네츠크주 일부에서 철수하며, 이 철수 지역은 중립적 비무장 완충지대로 인정되고, 국제적으로 러시아 연방의 영토로 인정된다. 러시아군은 이 비무장지대에 진입하지 않는다."

최소 25만 명의 민간인이 거주하는 도네츠크 요새 도시 지역(슬로뱐스크·크라마토르스크·드루즈키우카)을 넘기는 방안은 우크라이나 여론상 수용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러시아는 지난 1년 넘게 포크로브스크 점령을 시도해왔으며, 우크라이나가 전략적 요충지를 협상으로 넘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초안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우크라이나군 규모는 60만 명으로 제한된다."

우크라이나군은 2022년 2월 전면 침공 직후 25만 명에서 올해 1월 기준 88만 명 규모로 확대된 상태다.

60만 명이 평시에는 현실적인 숫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동시에 러시아 입장에서는 여전히 너무 큰 전력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크리스티나 하요비시나 우크라이나의 UN대표는 이렇게 밝혔다.

"우리의 레드라인은 명확하고 변함없다. 우리는 러시아가 임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러시아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자위권 또는 군의 규모나 능력을 제한하는 어떠한 요구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초안은 이어 크림반도, 루한스크, 도네츠크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사실상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법적 승인(법적 인정)은 아니며, 우크라이나 헌법상 국경의 "불가분성과 불가침" 원칙을 직접 위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부 헤르손·자포리자 지역은 현 전선 기준으로 동결하며, 러시아는 다른 점령 지역 일부를 포기하도록 규정돼 있다.

우크라이나의 미래: EU는 가능, NATO는 불가

초안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미래에 관한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임을 헌법에 명시하고,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향후에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조항을 규정에 포함한다."

"우크라이나는 EU 가입 자격을 가지며, 이 문제가 검토되는 동안 유럽 시장에 대한 단기 우선 접근권을 부여받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매우 낮고,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후보국 지위에 대해 다소 입장을 누그러뜨린 상태다. 그러나 해당 문서는 27개 EU 회원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에 사실상 EU 시장 접근권을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읽힌다.

우크라이나 헌법에는 EU와 나토 가입이 목표로 명시돼 있고, 유엔에서 흐리스티나 하요비시나 우크라이나 대표가 제시한 또 다른 '레드라인(양보 불가선)'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주권의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가입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동맹에 대한 결정권도 포함됩니다."

초안에는 이 밖에 나토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병력을 주둔시키지 않는다는 내용, 유럽 전투기가 폴란드에 배치된다는 내용, 우크라이나가 "비핵국가"임을 확약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향후 평화협정을 감시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의지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 구상과는 거리가 있는 조건으로 해석된다.

러시아 고립 해제 방안

여러 조항은 러시아를 고립에서 되돌려 "세계 경제에 재통합"시키고 G8 회원국으로 다시 초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푸틴이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이는 현실적으로 먼 이야기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점령·병합한 후 G7에서 퇴출되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6년 뒤 푸틴을 다시 받아들이려 한 시도도 있었다.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이 전면전 발발 이전에도 주저했던 만큼, 지금 이 상황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은 훨씬 낮다.

러시아 동결 자산은 어떻게 되나?

초안에 따르면, 동결된 러시아 자산 1000억 달러(약 147조원)를 "미국 주도의 우크라이나 재건 및 투자 사업"에 투입하고, 수익의 50%는 미국이 가져가며, 유럽은 재건을 위해 10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도록 했다.

이는 올해 초 우크라이나와 체결된 미국의 광물 계약을 연상시키는 조치로, 미국의 참여 대가를 확보하는 방식이며, 유럽연합에는 큰 비용 부담만 남긴다.

언급된 금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올해 초 우크라이나 재건 총 비용은 5240억 달러(약 771조3280억원)로 추정됐다.

약 2000억 유로(약 339조760억원) 규모의 러시아 동결 자산은 대부분 벨기에에 있는 중앙예탁기관 유로클리어에 보관돼 있으며, 유럽연합은 현재 이 자금을 키이우에 재정적·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나머지 동결 자산은 초안에 따라 "미-러 투자 기구"로 들어가 러시아가 일부 자금을 되찾을 수 있지만, 동시에 미국에도 재정적 이익이 돌아가게 된다.

초안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은?

여러 전문가들은 초안이 우크라이나 군사력이나 무기 산업에 대한 제한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초안에는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안보 보장은 무효가 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개발 중인 장거리 미사일인 플라밍고(Flamingo)와 롱 넵튠(Long Neptune)에는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 초안이 최종 평화안인가

미국은 이 초안을 '공격적 일정'에 따라 신속히 추진하려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보도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추수감사절 전까지 수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초안 작성에 참여한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를 "전쟁 종식을 위한 잠재적 아이디어 목록"이라고 표현했다.

독일 외교장관 요한 바데풀 역시 작성자 스티브 위트코프(트럼프 특사)와 논의한 뒤, 28개 조항을 최종 평화안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내용은 미 웹사이트를 통해 유출된 초안과 비교할 때 삭제·수정된 흔적도 있어, 문건이 여전히 작성 중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외무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문서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초안은 푸틴 측 요구안인가?

러시아 특사 키릴 드미트리예프가 이 문건을 두고 스티브 위트코프와 최대 3일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협상이 모스크바에 유리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 초안이 "평화 협정의 기반이 될 수 있다"며 신중한 긍정 반응을 보였다.

특히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넘기는 조항은 러시아 측 요구에 크게 기운 내용으로 평가된다.

다만 남부 전선 동결 조항은 러시아가 헌법에 포함시킨 헤르손·자포리자 점령지와 충돌할 수 있어, 크렘린에도 난제가 될 수 있다.

제재 해제 조건이 "단계적·사안별 합의 방식"으로 명시된 점도, 러시아가 보다 빠른 해제를 원할 경우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전면 사면 조항은 모스크바에는 유리하지만, 키이우와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초안이 일부 푸틴 측 요구를 반영해 큰 양보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NATO 관련 문구 일부는 러시아 요구에 비해 여전히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러시아는 그간 전쟁의 "근본 원인"으로 나토 동진 저지를 평화 조건의 핵심으로 주장해왔으며, 초안은 이 요구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

28개 조항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 인구에 대한 차별 주장과 관련된 문구를 간접적으로 담고 있다.

초안에는 "양측은 모든 차별적 조치를 폐지하고,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 언론과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러시아가 점령 중인 자포리자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동등하게 분배'하도록 하는 조항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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