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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카르텔의 안가에서 미국의 길거리까지 … BBC가 추적한 '트럼프 관세 표적' 펜타닐

1일 전
검은 후드티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성의 모습
BBC
LA에서 멕시코로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마약상 제이는 펜타닐 수요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온 마약상 제이는 운송 준비 중인 멕시코 마약 카르텔 조직원을 한쪽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직원은 이 합성 오피오이드 약물을 우선 포일로 싼 뒤 비닐봉지에 넣어 밀봉한 다음 언뜻 평범해 보이는 제이의 차량 연료 탱크에 넣었다. 휘발유 몇 방울이 튀었다.

제이(가명)는 이번 거래를 위해 미국에서 국경을 넘어 이곳 멕시코 카르텔의 안가를 찾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네의 다른 민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올 때는 빠르게 운전해야 했으며, 취재진이 들어오자마자 철문이 굳게 닫혔다.

마약을 직접 제조하는 곳은 아니지만, 남성들은 여전히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아 했다. 이들 모두 조용히 목소리를 낮춘 채 빠르게 움직였다.

백악관이 국경을 통해 몰래 유입되는 펜타닐을 문제 삼아 관세 인상에 나서면서 이 치명적인 펜타닐 사업은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준 분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BBC는 국경을 따라 벌어지는 카르텔이 어떤 작전을 펼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운반된 마약이 끝내 도달하는 미국 내 최종 소비자를 만나볼 드문 기회를 얻었다. 이를 통해 현재 국제 사회에서 벌어진 관세 다툼이 마약 밀매 근절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안가에서 만난 남성들은 유명한 어느 카르텔의 하급 조직원들이었다. 차에 마약을 싣던 남성 2명은 잠시나마 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연료 탱크에 마약을 싣는 남성은 마약으로 인해 숨지는 사람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킬킬거리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우리도 가족이 있으니 당연히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는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이 남성들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휘발유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차량 뒷좌석을 들어올려 연료 탱크에 마약을 싣고 있었다. 차 안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면 국경 단속 과정에서 의심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M'이라고 표기된 연두색 알약 총 5000알이 빽빽이 포장되어 있었다. 제이는 자신이 매주 LA와 미국 북서부 지역에서 판매하는 양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제이는 부드러운 말투로 "나는 매주 알약 10만 개를 판매한다"면서 "차량 1대에 10만 개를 한꺼번에 담아 운반하지 않는다. 여러 차량에 나누어 들여오려고 한다. 그래야 마약을 잃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마약과 및 이민자의 자국 유입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모든 멕시코산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일부 관세는 오는 4월 2일까지 연기되었다.

이렇듯 펜타닐 밀매 근절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 정책 목표 중 하나이지만, 제이는 성공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했다.

제이는 웃으며 "1기 행정부 때도 똑같은 목표를 세웠지만 결국 실패했다. 언제나 수요는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펜타닐의) 최대 수요처가 어디인가? 바로 미국이다. 우리에게는 운이 좋은 일이다. 우리는 이곳 국경을 통한다"고 했다.

엄청난 양의 펜타닐이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대부분 멕시코를 통해 들어온다. 이로 인해 제이는 자신이 LA에서 파는 마약의 가격이 1년 전 한 알당 5~6달러 정도였으나 현재 1.50달러대로 떨어졌다고 했다.

멕시코 경찰은 카르텔들이 양귀비에서 추출해 만드는 다른 약물에 비해 완전히 합성 약물이기에 제조 및 운반이 훨씬 쉽다는 이유로 펜타닐로 대거 전환하고 있다고 말한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50배 더 강력하다.

이토록 강력한 펜타닐은 미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미국에서는 총기나 자동차 사고보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다.

약물 과다로 인한 사망자 수 자체는 오피오이드 과량 투여로 인한 부작용을 개선하는 길항제인 날록손 사용 확대 등의 이유 덕에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0월~2024년 9월 기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8만 7000명으로, 전년도의 11만 4000명에 비하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자동차 뒷좌석 아래 연료 탱크에 마약을 숨기고 있는 남성의 모습
Darren Conway/BBC
카르텔 조직원들은 차량 뒷좌석을 들어 올린 뒤 연료 탱크에 마약을 숨겼다

한편 미 당국의 징벌적 관세를 막고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자국 방위군 1만 명을 국경에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멕시코 당국은 지난해 10월 이후 마약 밀매의 중심지로 손꼽히는 시날로아 지역에서만 900명 이상을 체포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펜타닐을 1톤 이상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멕시코 내 사상 최대 규모로, 실제로 멕시코 당국이 지난 5개월 동안 압수한 펜타닐 양은 지난해의 양보다 더 많다.

아울러 멕시코 당국이 중국으로부터 펜타닐 제조에 필수적인 성분이 들어오지 않도록 나서면서 카르텔들은 각 알약의 강도를 줄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위험성도 비교적 낮아졌다.

그리고 올해 2월 말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새롭게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멕시코 범죄 조직 6개 중 5개의 조직원들을 포함해 마약 카르텔 내 거물급 인사 29명이 미국으로 인도되었다.

또한 셰인바움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해당 비밀 임무가 폭로된 후 펜타닐 제조 실험실을 찾고자 미 CIA가 자국 영토에서 감시 드론 작전을 강화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야구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성
Darren Conway/BBC
일부 카르텔 조직원들은 잠시 후회하는 모습을 내비치면서도 자신들이 사라져도 마약 거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제이는 자신의 거래가 자신과 고객들에게 미치는 위험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저들은 늘 우리가 미국 시민들을 중독시키고 있다고 비난합니다만, 저들이야말로 마약의 최대 소비처입니다."

제이는 자신이 파는 약물 탓에 사망하는 이들에 대한 죄책감 및 부채 의식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격리했다. 자신은 자신이 파는 약물을 사용하다 사망한 사람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나는 다른 공급업자들과만 거래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카르텔은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의 단속을 피하고자 주로 미국 시민권자를 고용해 국경을 넘어 마약을 운반한다.

찰리라는 이름의 운전사도 미국 여권 소지자였다. 그 또한 펜타닐 유행으로 인한 고통에 대체로 무관심했다. "나는 돈이 필요하다"는 찰리는 마약을 몇 번 운반해봤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너무 많다"고 답했다. (이후 취재진은 연료 탱크에 실린 알약 5000개가 아무 일 없이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망한 이들의 사진으로 뒤덮인 벽
Darren Conway/BBC
미 마약단속국(DEA) 본부에는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숨진 수천 명을 기리는 추모비가 설치되어 있다

최근 셰인바움 대통령은 미국 내 펜타닐 위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옥시코돈과 같은 진통제가 합법적이지만 "무책임하게 승인"되면서 시작된 일이라며, 마약 위기의 수요 측면을 강조한 바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일일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는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오피오이드 소비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 동부 해안 지역 내 최대 노천 마약 시장으로 불리는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지역에서는 로살린드 피차르도가 자신의 2번째 성경을 펼쳐 들고 나르칸(성분명 '날록손') 을 사용해 오피오이드 과다복용 환자를 살린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6년간 그 숫자는 총 2931회에 달한다. 피차르도는 페이지를 넘기며 늘어가는 이 숫자들을 보며 자신이 살릴 수 있었던 사람과 살리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우리 도시를 구하라' 프로젝트의 피차르도는 "60대 남성... 30대 남성... 매우 마른 체형에 머리카락이 없는 30대 여성" 등 목록을 나열했다. 펜타닐 희생자들의 이름 옆에는 나르칸 투여량도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 피차르도는 긴급한 상황에서 급성중독의 부작용을 억제하고자 이 약물을 사용했다.

창문에 ‘선샤인 하우스’라고 적힌 상담 센터 밖에서 입장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로잘린드 피차르도
Darren Conway/BBC
로잘린드 피차르도는 오피오이드 등의 효과를 억제하는 길항제인 날록손으로 과다복용 환자 수천 명을 살렸다

'선샤인 하우스'라는 상담 센터를 운영하는 피차르도는 이곳은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공간'이라고 했다. 이 지역 주민들을 묘사하는 '중독자', '약쟁이', '좀비'와 같은 용어에도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신 피차르도는 이들을 '선샤인(햇살)'이라고 부른다.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이들도 있다.

피차르도는 '7살 아이였다. 나르칸을 2차례 투여했다'면서 말을 꺼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급한 연락을 받았다. 집에 찾아가보니 여성은 파랗게 변한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우선 소녀를 바닥에 눕혔다.

그런데 피차르도가 집안에 들어오자 아이의 아버지인 남성은 가방을 챙겨 들고 위층으로 도망쳤다.

피차르도는 "만약 내 아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나는 아이를 돕고자 뛰어다녔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간질 증상이 아닌지 의심했으나, 이내 근처 탁자 위에 놓인 약 저울과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사실 소녀의 아버지는 마약상으로, 이 7살 아이는 아버지가 숨겨둔 마약에 중독되어 과다 복용 부작용을 앓고 있는 상황이었다.

피차르도는 "정말 화가 났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나르칸을 2차례 투여하고 아이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한편 다른 페이지에 적힌 '임신 6개월의 여성. 나르칸 2차례 투여' 사례의 여성 또한 다행히 생존했다고 한다.

상담실 대기실에서 기절한 듯 앉아 있는 남성의 모습
Darren Conway/BBC
'선샤인 하우스'를 찾은 마약 사용자 중 일부는 취재진의 촬영 도중 기절하거나 주저앉았다

켄싱턴에서는 마약이 가격도 저렴하고 유통량도 많다. 사람들은 길거리 공공장소에서 마약을 투약한다. 피차르도가 거리를 걷다 보면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들, 바지를 내린 채 인사불성이 된 여성, 지하철 개찰구 옆에 엎어진 남성, 손에 돈을 쥔 채 휠체어에 앉아 눈을 감고 남성이 눈에 띈다.

휠체어에 앉은 이 남성처럼 많은 마약 사용자들이 사지를 절단했다. 거리에는 동물용 진정제로 신종 마약인 '자일라진'이 펜타닐과 섞여 판매되고 있는데. 이 약물을 투입하면 팔다리 등에 죽은 부스럼 조직이 생기고, 이를 그대로 두면 감염이 되기 쉽다. 도시 곳곳에서 악취가 풍겼다.

존 화이트는 올해 56세로, 40년간 중독에 맞서 싸우고 있다. '선샤인 하우스에서 피차르도는 그에게 직접 만든 수프 한 그릇을 대접했다.

"평생 이 도시에서 살았다"는 화이트는 "펜타닐과 오피오이드의 유행은 내가 본 최악의 상황이다. 펜타닐은 너무 중독성이 강해서 더 많이 찾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마약에 펜타닐을 섞고 있다"고 토로했다.

화이트는 펜타닐이 섞인 대마초를 피운 후 펜타닐 과다복용 부작용을 겪었다. 헤로인, 코카인, 대마초 등 여러 불법 약물에 펜타닐이 섞이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존 화이트
Darren Conway/BBC
존 화이트는 펜타닐 유행 사태는 정말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한편 피차르도는 멕시코로부터 펜타닐이 유입되지 않으면 켄싱턴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리라고 거의 기대하지 않는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지닌 문제는 그 당시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효과가 없을 것 같다"는 설명이다.

피차르도는 한 약물의 공급이 끊기면 다른 약물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때는 헤로인이었으나 이제는 사라졌다. 지금은 펜타닐이 거래되고 있다"는 그는 "그리고 이제 자일라진이 그 자리를 대체할 거이다. 사람들은 계속 사람들을 중독시켜 이들의 고통에서 돈을 뜯어낼 방법을 계속 찾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샤인 하우스 바로 맞은편에서 한 젊은 여성이 콘크리트 바닥에 널브러진 채 쓰러져 있는 채 발견되었다. 여성은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피차르도는 의료 키트를 챙겨 재빨리 현장에 도착해 날록손을 투여했다.

다행히 이 여성은 의식을 되찾았다. 살아났다.

또 한 명의 생명을 구한 피차르도는 너덜너덜해진 성경 뒷장에 숫자를 하나 더 적어 넣으며 선샤인 하우스로 돌아왔다.

최상단 사진 출처: 대런 콘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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