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지도, 한국·중국·북한에서만 안된다고요?'

"한국 오기 전에 준비가 좀 필요했죠. 구글지도가 잘 안된다고 들었거든요."
서울역에서 만난 스위스 관광객 롤랑드 비엔즈 씨는 휴대폰을 열어 세 개의 앱을 열어서 보여줬다. 구글지도, 네이버지도, 그리고 우버. 그가 2주 동안 한국을 자유롭게 여행하기 위해 사용한 앱들이다.
비엔즈 씨는 "걱정했던 것보단 (구글지도가) 잘 작동했다"라면서도 목적지까지 도보로 걸리는 시간을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불편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목적지까지 걸어서 이동해야 할 때는 네이버지도를, 정확한 거리를 계산해야 할 때는 우버를 켰다.
"하지만 직관적이지가 않고, 가끔은 (인터페이스에) 한국어와 영어가 섞여 있기도 했어요."
익명을 요구한 38세 독일 여성 클라라 씨는 한국을 다섯 차례 방문했다. 원래 구글지도를 이용하지만, 한국에서는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대안"으로 네이버지도를 설치했다.
클라라 씨는 한국을 방문한 주변인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며 "대부분이 (구글지도를) 대체할 수 있는 앱을 찾아서 썼다"라고 말했다.
구글이 구글지도를 서비스하는 국가는 250여 개국에 달하지만, 한국에서는 반쪽짜리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자동차와 도보를 통한 길찾기 기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글에 따르면 현재 길찾기 서비스가 완전하게 제공되지 않는 곳은 한국과 중국, 북한뿐이다.
10년 넘은 논쟁
구글은 10여 년 전부터 한국 정부에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올해 2016년 이후 9년 만에 세 번째 공식 요청에 나섰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국토부)는 다음 달 11일까지 국외 반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구글이 해외 반출을 요청하는 지도는 1:5000 축척 지도다. 실제 50m 거리가 지도상 1cm로 나타나는 지도로, 좁은 골목길까지 표시할 수 있다.
1:5000 지도는 국토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국가기본도로 제작 및 갱신 작업을 하고 있으며, 국내 업체 상당수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행 공간정보관리법에 따르면 1:25000(실제 250m를 지도상 1cm로 표시) 축척보다 세밀한 지도를 해외로 반출하려면 국토부 장관 승인이 필요하다.
국토부는 2016년 불허 결정을 내리면서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은 남북이 대치하는 안보 여건에서 안보 위험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도 데이터를 반출하지 않고 국내에서 활용할 경우 외국업체에도 제공이 가능하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BBC는 국토부에 구글의 이번 반출 요청에 관한 입장을 물었으나, 논의 중인 사항인 만큼 자세한 답을 듣지 못했다.
다만 국내 한정이라고 하더라도 지도 데이터를 직접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길찾기 서비스가 많은 컴퓨팅 파워(연산 능력)를 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구글은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지 않으며, 구글지도는 국내 사업자인 티맵모빌리티의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안보 우려
지도 반출 이슈와 관련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안보 문제다.
북한과 휴전 중인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저장했다가 유출될 경우 악용돼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리정보시스템(GIS) 전문가인 최진무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처럼 국가 차원에서 높은 정확도로 1:5000 고정밀 지도를 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아마 한국에서 제작하는 1:5000 수치 지형도 같은 경우에는 거의 적어도 1m 이내 허용오차를 갖고 있을 것"이라며 "만약 북쪽에서 1:5000 지도를 다 확보해서 포를 쏜다고 하면 대상 지역에 1m (오차범위) 이내로 포탄이 날아올 수 있다는 건데, 그러면 해당 지도는 고정밀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라고 말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지도가 해외 반출되면) 군부대나 청와대 같은 보안 시설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반출할 경우) 보안 시설을 블라인드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과 한국 정부는 지도상 보안 시설을 블러(blur·가림)·위장 처리하는 등 보완 방안을 논의해 왔으나, 구체적인 방식 면에서 쉽게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안보 리스크가 없는 1:25000 지도로도 길찾기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반면 구글 관계자는 BBC에 1:25000 지도를 활용하면 자연 지형이 아닌 도심지에서는 길찾기 서비스를 구현할 수 없고, 현재 구글이 도심지 내비게이션에 활용하는 전세계 모든 지도는 1:5000 축척을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광활한 사막과 같은 자연 지형과 달리, 건물이 많고 도로가 좁고 복잡한 도심에서는 동선을 예측하기 위해 더 세밀한 지도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에 미칠 영향
하지만 안보만이 문제는 아니다. 업계에서는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까지 확보할 경우 국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구글이 지도 서비스와 연계돼 제공되는 예약, 택시, 광고 등 파생 서비스부터 나아가 자율주행, 드론 등 4차 산업에 있어서도 국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지도 반출을 허용하더라도 지도 생산과 지도에 대한 지식 재산권을 정확하게 명시하고 반출해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가 구글로부터 (지도 활용 서비스를) 역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지도 반출에 좀 더 긍정적인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관광업계다.
미래관광전략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관광객들이 어느 나라에 가도 다 구글지도를 사용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러기 좀 어려운 상황"이라며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우리나라 지도를 이용하려고 해도 언어 설정이 어렵고 업데이트도 좀 더디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용자 측면에서는 이제는 구글에 대한 (지도 서비스 시장) 개방을 논의해야 될 시점은 분명히 온 것 같다"라고 했다.
다만 정 소장은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구글의 영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도 지금 인공지능(AI)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온라인 여행 에이전시 수익이 굉장히 많이 감소하고 있거든요. 이런 부분들이 구글 AI와 연동되고 흡수됐을 때 관광과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구글이 다 가지고 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우려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관세 협상

다음 달 정부의 반출 결정에 앞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벤트가 또 있다. 바로 미국과 한국의 관세 협상 결과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3월 말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한국의 장소 기반 데이터 반출 제한을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우리나라는 안보 우려 때문에 (반출을) 수차례 불허했지만, 미국 무역대표부가 무역 장벽을 들어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라며 "(구글이) 집요하게 요구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당시 후보자였던 배 장관은 "구글에 지도 데이터를 반출하는 것이 산업별로 긍정적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며 "국가 안보 및 주도권 측면에서 신중하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8월 1일 상호관세 부과 유예 시한을 앞두고 협상이 한창인 가운데, 앞서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협상 과정에서 구글지도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지도의 생산비만 따진다면 사소하다고 볼 수 있는 문제여서 (협상 결과가) 걱정된다"라며 "(지도 데이터는) 자율주행이나 로봇배송, 드론 등 첨단 산업과 다 물려있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정 소장은 "공표한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 정부도 인공지능(AI) 관련 스마트 기술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관광 기술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라며 "구글을 통해 AI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때보다는 좀 더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