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어떻게 한국 드라마 붐을 일으켰나

4시간 전
응답하라 1988 속 한 장면. 성덕선, 성선우, 김정환, 류동룡이 치킨을 먹는 모습
CJ ENM

1980년대 서울의 일상을 담은 감성적이면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가 있다. 10년 전 방영된 이 작품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오징어 게임'과 같은 다른 한국의 글로벌 흥행작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큰 사랑을 받은 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신원호 감독은 "이 작품의 핵심은 바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10년 전 케이블채널 tvN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가 관계에 집중하고 있음은 엉뚱발랄한 소녀 성덕선(혜리 분)이 등장하는 첫 회에서부터 잘 느낄 수 있다.

끈끈한 연대감을 자랑하는 쌍문동 주민들의 응원 속에 덕선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마다가스카르 선수들을 안내하는 일명 '피켓 걸'로 선발되어 준비에 한창이다. 쌍문동 동네 어른들은 덕선을 흐뭇하게 바라보지만, 함께 커온 친구들의 반응은 대체로 무덤덤하기만 하다.

수십 년간의 독재 끝에 새로이 민주주의를 맞이한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에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기념비적인 순간에도, 덕선과 친구들은 오히려 18살이 되는 일에 더 집중할 뿐이다.

1988년 여름부터 1995년까지, 특히 첫사랑과 가족사를 중심으로 이 아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 '응답하라 1988'은 공감이 가는 인물과 이야기를 내세우며 큰 호응을 얻었으며, 현대 한국 드라마의 판도를 바꿔놓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케이블 드라마 전성기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갯마을 차차차'부터 '사랑의 불시착' 등 보다 사실적이고 향수를 자극하는 K-드라마 흐름을 만들어낸 토대가 되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며 넷플릭스의 기념비적인 히트작 '오징어 게임' 등 다른 K-드라마들이 글로벌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응답하라 1988 속 한 장면. 성덕선과 최택의 모습
CJ ENM
이 드라마는 성덕선(혜리 분)과 동네 친구들이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드라마는 무엇보다도 청춘의 기쁨을 아주 강렬하게 일깨워준다.

어른들은 돈 걱정에, 학생 시위에 참여한 자식 걱정에 마음을 졸이며 변화하는 한국 사회가 자녀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지만, 덕선과 친구들은 서로의 방에 모여 바닥에 앉아 피자를 먹으며 마지막 남은 조각을 누가 먹을지를 두고 티격태격 다툴 뿐이다.

이들은 오우삼의 1986년 액션 영화 '영웅본색'을 반복해서 보고, 함께 춤을 추고, 만화도 읽고, 남자아이들은 인기 여배우 이미연(메타적 반전으로, 실제 배우 이미연은 성인 덕선 역을 맡았다)에 열광하기도 하며 어린 시절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불안정한 과정을 헤쳐 나간다.

신 감독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 즉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를 돌보았는지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작은 연대감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응답하라 1988'이 그런 역할을 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이 드라마는 한국 시청자들은 물론 전 세계 시청자들을 하나로 모으며 점점 더 멀게만 느껴지는 온라인 이전 세상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국 내 미친 영향

신 감독은 "(응답하라 1988 방영될) 당시만 해도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대형 지상파 3사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환경이었다"고 설명했다.

케이블 TV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작인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상태였다.

그러나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장악한 한국 방송계의 판도를 뒤흔든 작품은 '응답하라 1988'이 최초였다. 말 그대로 케이블 드라마가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한 것이다.

특히 최종회의 경우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시청자들의 관심 속 한국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인 19.6%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코리아헤럴드의 이윤서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자는 "이 성과가 더욱 놀라운 점"에 대해 "이 드라마가 시청률뿐만 아니라 화제성까지 동시에 잡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이 두 가지를 항상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드라마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한국 드라마는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여 시청률은 높으나 온라인에서 영향력은 제한적인 작품, 청년층을 겨냥하여 입소문과 밈에 의존하여 흥행하는 틈새 드라마이다.

그러나 '응답하라 1988'은 모두를 위한 드라마였다. 한국의 문화 평론가인 김헌식 씨의 표현대로 이 드라마는 도시의 좁은 골목길에 모여 살며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하는 서울의 "골목 문화"를 반영하였기에,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인물을 등장시켰기에 온 가족이 함께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이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당시 한국 드라마는 스릴러 혹은 멜로 장르물이 대다수였으나, 이 드라마만의 꾸밈없는 현실주의는 시청자들에게 섬세한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젊은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과거를 돌아보고 부모 세대 등 이전 세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청춘도 자신의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작중 덕선의 언니(이자 동생을 자주 괴롭히던) 보라 역을 맡은 배우 류혜영도 이러한 감정에 공감한다고 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보라 역을 연기하며 내가 직접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내가 누리는 이 평온한 삶이 그 길을 닦아준 그 시절 청춘들 덕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 속 한 장면. 류동룡과 김선영, 라미란의 모습
CJ ENM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여러 가족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한편 이 드라마는 에어 조던, 워크맨, 퍽맨('팩맨'의 원래 이름이다)은 물론 80~90년대 유행 가요 등을 등장시키며 한국 사회에 레트로(복고풍) 열풍을 일으켰다. 80년대 스타일과 팝가수들이 다시 차트에 등장하였고, 20년도 전에 단종되었던 크라운 맥주가 재출시되었으며, 레트로 패션이 유행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극본을 맡은 이우정 작가는 "우리 드라마라 레트로를 다룬 첫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 레트로 문화, 90년대 풍경을 다룬 드라마의 부상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이후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의 아저씨', '슬기로운 의사생활'(신 감독과 이 작가가 다시 함께한 드라마이다) 등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일상생활 소재의 드라마가 속속 등장했다.

어떻게 세계적 인기를 얻었나

그러나 이 드라마 속 이야기에 한국을 넘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현했다.

류 씨는 "응답하라 1988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하고 평범하며 보편적인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 드라마의 해외 영향력 조짐은 2016년 방영된 중국에서 처음 감지되었다. 방영 한 달 만에 무려 2억3500만 명이 시청한 것이다.

이후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달로 TV 환경이 더욱 글로벌화되면서 응답하라 1988은 전 세계 더 많은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16년 스트리밍 서비스 '비키'를 통해 처음 스트리밍 플랫폼에 등장하였고, 2020년 넷플릭스에 추가되며 전 세계적인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넷플릭스 자체 집계에 따르면, 응답하라 1988은 지금도 매년 전 세계에서 수백만 시간의 시청 시간을 기록 중이다.

오늘날, K-드라마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의 성공도 한몫했다.

김헌식 씨는 "응답하라 1988은 한국 드라마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했다.

"그전까지 (K-드라마는) 유행을 좇는 드라마, 자극적인 인기 드라마, 장르 드라마로만 나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따뜻하고 연민 어린 드라마도 충분한 인기를 얻고 있으며, 국제 무대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폭싹 속았수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같은 최근 드라마들의 성공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응답하라 1988' 및 이후 등장한 따뜻하고 감성적인 드라마들은 '오징어 게임'처럼 화려한 볼거리와 개성 넘치는 드라마와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회당 대부분 80분이 넘는 이 20부작 드라마의 느릿느릿한 호흡은 오늘날 스트리밍 플랫폼 드라마들이 피하려는 요소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이 드라마를 사랑한다.

이윤서 기자는 "2015년과 2016년 방영 당시부터 응답하라 1988이 특별했던 이유는, 고집스럽다고 할 만큼 한국의 평범한 삶 이야기에 집중하였으며, 그 점을 이해하였기 때문"이라면서 "그런 친밀함과 진정성이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반드시 자극적이고 강렬한 볼거리가 있어야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끄는 건 아님을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이우정 작가 또한 "[응답하라 1988의] 주제는 보편적이지만, 매우 한국적인 방식으로 이를 풀어내고 있다"면서 장례 문화부터 함께 모여 먹는 식사 문화까지 한국의 문화와 관습을 섬세하게 담아내어 "과거 한국 사회의 본질을 포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욱더 한국 고유의 것들을 담아낼수록 오히려 세계적으로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응답하라 1988 속 한 장면. 전화 중인 성덕선의 모습
CJ ENM
평화롭고 부드럽게 일상을 담아낸 '응답하라 1988'은 오늘날 여러 화려한 드라마 속에서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 기자는 "'가장 위대하다'는 표현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응답하라 1988은 한국 드라마가 전통적으로 가장 잘하는 것의 본질을 구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에는 아주 거대한 극적인 자극 요소는 피하고 일상의 리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작은 이야깃거리와 인물 간 깊은 유대감을 엮어낸 작품이죠."

방영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가족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이 인간적이고 향수 어린 드라마는 여전히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있으며, 시청자들에게 우리의 수많은 고민들이 문화를 초월하여 공존하며, 어느 나라든 형제자매는 같은 일로 서로 다툰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작가는 "이 시리즈의 각본을 집필할 당시 국외 시청자들은 대상이 아니었다"고 회상하며 "이 드라마가 한국에서 사랑받을 것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며 사실 지구상 모든 이들이 비슷한 시각을 공유한다는 걸 느꼈다"고 마무리했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