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선수 16명 중 12명이 여성'...북한 스포츠, 왜 '여성 파워' 주목받나?
세계 각국 선수들이 수년간 고된 훈련의 빛나는 성과를 선보이는 올림픽. 특히 2024 파리 올림픽은 완전한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남녀 출전 선수 성비를 50대 50에 근접하게 맞췄다.
하지만 출전 선수의 성비에 주목했을 때 유독 눈에 띄는 팀이 있다. 8년 만에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이다. 출전 선수는 총 16명. 그중 12명이 여성이다.
지난달 31일 북한 김미래·조진미 선수가 다이빙 여자 싱크로 1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북한이 다이빙에서 메달을 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김금영·리정식 선수도 탁구 혼성복식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북한 선수단에는 북한 관영매체들이 올해 초 발표한 ‘2023 10대 최우수 선수’에도 이름을 올린 이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명단에 오른 10명 중 8명이 여성이다.
물론 주요 국가들에 비해 전체 참가 인원이 많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북한 여성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체육 강국 건설'
북한 전문가들은 역대 북한 지도자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인민’을 대상으로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고 말한다.
북한학자 이나영 씨는 BBC 코리아에 “사회주의 체육이 지향하는 바가 노동과 국방에 이바지할 수 있는 튼튼한 신체를 가진 ‘사회주의적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뿐만 아니라 구소련이나 중국도 다 이러한 기조로 체육 정책을 설계해왔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북한학 전문서점을 운영하는 이 씨는 ‘북한의 여성체육 담론’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특히 북한이 1960~70년대부터 엘리트 체육인 양성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봤다. 당시 올림픽은 “체제 경쟁의 대리전”이 이뤄지는 곳이었고, 여성 선수의 활약은 “사회주의권 여성들은 평등하고 이미 해방을 이뤘”음을 보여주기에 제격이었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1972년 올림픽에 처음 참가했다. 뮌헨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며 은메달 1개만을 획득한 한국을 압도했다.
2000년대 탈북한 북한 전 복싱 국가대표 김상윤 남북스포츠문화연구원 이사장은 "내가 북한에서 운동을 하던 90년대에도 학교마다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분리해서 유소년 스포츠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었다"며 "(최고의) 운동학교에서는 보통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인재를 선발해서 교육을 시켰다"고 회상했다.
2011년 말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집권 초기부터 ‘체육강국 건설’을 주요 과제로 강조해왔다. 그 스스로도 ‘스포츠 애호가’로 알려져있다.
집권 직후 체육 정책 및 사업 총괄을 위해 발족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는 지금까지도 핵심 간부들의 참여로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에는 ‘체육 텔레비전방송’을 신설해 주말마다 스포츠 경기를 방송했다.
이우영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굉장히 제한적인 수준일지라도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지향했고, 그런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 자신있다고 여기는 체육 쪽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개인적 취향까지 결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파워' 비결은
그렇다면 최근 북한 여성 선수들의 활약에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북한 여성 선수들에게 명확한 경쟁 우위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면서도, 북한 남성 선수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
북한 체육 분야 등을 연구하는 허정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교수는 북한 여성에 비해 남성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다소 불리하다고 분석했다.
허 교수는 “북한 남자 스포츠 선수들의 가장 큰 단점이 왜소한 신체”라며 “서구권 선수들의 체격을 따라가려면 고기 위주의 식단으로 잘 먹고 많이 먹는 등 복합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대부분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체육강국 건설’을 선언한 북한 지도자 입장에서 제한된 재원을 상대적으로 성적이 더 잘 나오는 여성 스포츠에 더 관심을 갖고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투선수 출신 북한이탈주민 한설송 씨는 북한에서 여성 스포츠 인재를 특별히 더 후원한다고 느끼지는 않았다면서도 “성차별적 발언으로 들릴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북한에서 선수들끼리 나눴던 대화가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유럽 등지의 남자들은 체질적으로 우수한 데다 스포츠 역사도 깊기 때문에 (북한) 남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장벽을 넘기 힘들다’라는 거였어요. 반면 여성의 경우 국제적으로 스포츠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고…또 북한 여성이 강인하거든요. 그래서 비인기 종목에서는 파고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뭐 이런 얘기를 했었죠.”
현재 30대 초반인 한 씨는 2010년대 중반 탈북하기 전까지 북한에서 7년여간 전문 권투선수로 활동했다. 유명 선수를 다수 배출한 명문 4·25체육단에 소속돼 활동한 경력도 있다.
한 씨의 말대로 북한 여성 선수들이 활약하는 분야는 복싱, 레슬링, 역도, 육상 등 종목이 다소 제한적이다.
북한에서 ‘체육 영웅’ 대접을 받는 여성 선수로는 1960년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육상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한 신금단 선수,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당시 일본 유도 최강자 다무라 료코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계순희 선수, 19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7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 우승자 정성옥 선수 등이 있다.
여성 지위 향상?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김정은이 체육을 장려하는 것과 더불어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해왔다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후 여성 정책 전반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후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국제부녀절’로, 11월 16일을 ‘어머니의 날’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독려하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이고 있다. 딸 김주애, 동생 김여정, 최선희 외무상 등 공식 석상에서 여성의 존재감도 커졌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23 북한인권백서’를 통해 김정은 체제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으며, 가정 내 발언권이 강해졌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고정된 성역할과 차별 의식은 주민들에게 잔존하는 것으로 조사된다”며 “특히 도시보다 농촌에서 성차별 의식과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낙후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북한이 가부장적인 사회는 맞지만, 취업이라든지 취학이라든지 그밖에 활동에 대해서 제도적으로 (여성) 차별이 있진 않다”며 “그래서 여성 체육이 위축됐던 적이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김정은이 여성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정상국가로 보이기 위한 시도와 더불어 젊은 세대를 겨냥한 사상 재교육 목적이 있다고 봤다.
“현재 북한에서 10대 후반~20대 초반 젊은이들,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세대는 부모님들이 대부분 장마당(시장)에서 경제활동을 경험한 세대거든요. 이 세대는 부모님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면서 북한 사회주의가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남편을 대신해 경제활동을 위해 장마당(시장)으로 나왔고,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배급제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결국 장마당 세대 여성은 체제 설득 대상이자 자녀들에게 이를 교육시켜야 할 주체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북한에서의 진정한 여성 지위 향상을 뜻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여성에게 과중한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이나영 박사는 “북한 여성들은 당을 위한 인민이 돼야 하고, 노동에 이바지도 해야 하고, 출산·육아도 해야 하고, 이제는 반사회주의적인 기조를 막을 수 있게끔 자식 교육도 더 열심히 해야 하고…과한 책임이 여성들에게 주어지다 보니 이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여성 체육의 경우에도 훈련 과정에서의 폭력 문제나 훈련 인프라 확충 등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한 씨는 “북한은 여성 인권뿐 아니고 모든 게 열악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여성 인권은 더 보장받지 못한다”며 “(북한 체육계에서) 폭행이나 추행 이런 것들이 빈번히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남성이 (참가)하는 북한 내 대회·시합들은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데, 여성은 팀이나 인구가 좀 한정돼 있다 보니까 남성에 비해서는 대회·시합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나오는 여성 선수들보다 북한에는 더 우월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잠재돼 있다"며 "다만 올림픽에 못 나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유들이 있어 참여를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 씨는 국제 무대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을 동정심이나 반감을 갖고 바라보기보다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체육인’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그냥 (북한 선수들이) 일단은 이념을 떠나서 올림픽하러 온 사람들이니까, 응원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그들이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거,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됐음 좋겠다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