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시아 순방: BBC 특파원들이 분석한 기대되는 성과와 잠재적 위험 요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주 아시아를 방문하여 앞서 기대를 모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등 바쁜 외교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세계 1, 2위의 경제 대국 간 갈등이 고조되는 지점이기도 한 무역이 단연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질 전망이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 일정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첫 방문 국가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이후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백악관은 한국에서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각국 정상들이 기대하는 성과는 무엇이며, 잠재적인 위험 요소는 무엇일까.
BBC 특파원들이 이번 일주일간 주목해야 할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심은 중국
앤토니 저커(북미 특파원)
자국 기업에는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자국 재무부의 관세 수입은 늘릴 수 있는 새로운 무역 협정 체결은 아시아를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일 것이다.
세계 무역이라는 무대에는 여러 선수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성패를 가를 열쇠를 쥔 선수는 중국이다. 그리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2019년 이후 최초일 두 정상의 회동은 남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임기 중 미-중 관계의 방향을 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막대한 관세는 결국 지속불가능하다. 그리고 비록 명시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으나, 미국과 그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의 경제 전쟁이 계속 격화할 경우 이는 미국과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미-중 양국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질 때마다 미국의 주요 주가지수가 급락하는 현상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주 미국으로 귀국하기 전, 한국과의 협상은 마무리하고, 자국 제조업에 대한 일본의 신규 투자를 확보하는 등의 성과를 얻어냈다면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최우선 과제는 시 주석을 설득하여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재개하고, 최근 발표한 외국 기업의 중국 희토류 접근 제한 조치를 완화하고,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전면적인 무역 전쟁을 피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이것이야말로 게임의 전부다.
시 주석의 장기 전략
로라 비커(중국 특파원)
오는 30일 한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시 주석은 자신의 힘이 더욱 강력해지길 바란다.
반도체, 무기, 자동차는 물론 스마트폰 제조에도 필수적인 희토류 산업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을 활용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미국의 약점으로, 중국은 이를 쥐고 흔들고 있다.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하여 미국 농민들을 괴롭히고 트럼프 대통령의 농촌 지지층을 뒤흔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로부터 교훈을 얻은 시 주석은 이번에는 관세로 인한 고통도 감수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한때는 중국 수출의 5분의 1을 차지했던 미국은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한 시장이 아니다.
한편 시 주석은 여전히 미국과의 경제 전쟁을 벌이면서도 동시에 자국 내 여러 난제를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미국은 시 주석의 이러한 고민을 잘 알고 있다. 청년 실업률 상승, 부동산 위기, 지방정부의 부채 증가, 국민들의 소비 의욕 저하 등이 그 예다.
전문가들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AI 등에 필요한 첨단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재개하거나, 대만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축소하는 데 동의한다면 중국도 협상을 제안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큰 차이점은, 트럼프 대통령은 때로는 주사위를 던지듯 빠른 승부수를 즐기는 인물로 보이는 반면 시 주석은 더 긴 호흡의 전략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결국 핵심 질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과연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나'로 귀결된다.
'평화' 행사의 주연 역할
조나단 헤드(동남아시아 특파원)
말레이시아 방문 중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직 한 가지에만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바로 자신이 주인공 역할을 맡아 태국과 캄보디아가 어떤 식으로는 평화 협정을 맺는 그림을 연출하는 것이다.
양국은 국경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국경 비무장화 합의에 서명했다.
두 국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감당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양국은 서로 폭격과 포격을 주고받던 지난 7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자 즉각 휴전에 동의했다.
한편 다른 아세안 회원국들은 트럼프의 짧은 방문 자체만으로도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이들 국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으며 격동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트럼프의 마지막 아세안 정상회의 방문 이후 동남아시아의 대미 수출은 2배로 증가한 바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떠나고 나면, 나머지 아세안 정상들은 아세안 내부 통합을 향한 조용하고도 점진적인 외교 등 조금 더 정상적인 업무 활동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들의 주요 의제로는 트럼프의 관심 밖인 분쟁도 포함된다. 바로 2021년 잔혹한 쿠데타로 촉발되어 이후 모든 아세안 회의마다 그림자를 드리운 미얀마 내전이다.
'서면으로 부탁드립니다'
수란자나 테와리(아시아 비즈니스 특파원)
세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의 제조업 강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로부터 한숨 돌릴 기회를 찾고 있다.
이미 합의한 국가도 있고, 여전히 협상 중인 국가도 있지만, 최종 서명까지 마친 국가는 없다.
따라서 공식적인 서명까지 이어지거나, 적어도 유망한 협상 소식만 전해져도 환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을 보자. 미중 정상회담 소식은 진전을 시사하는 듯 하지만, 관세, 수출 통제부터 두 경제 대국 간 갈등의 근본 원인인 인공지능 및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우위 선점에 이르기까지 두 정상 사이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긴장이 완화된다면 중간에 끼어 있는 아시아 내 다른 국가들도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동남아시아의 상황이 가장 애매할 수 있다. 전자제품 분야에서 미국의 공급망과 깊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중국 측 수요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동남아시아의 대미 수출은 2배로 증가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10~40%의 관세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의 제조업체들을 휘청거리게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관세는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운영하는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같은 미국 반도체 업체들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는 약 100억달러(약 14조원) 상당의 반도체를 미국에 수출했는데, 이는 미국이 수입한 전체 반도체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편 일본과 한국 등 비교적 부유한 아시아 국가들은 이와는 또 다른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미국과 가까운 동맹국이지만 현재는 그 어느 것도 섣불리 예측하기 힘든 시기다. 미국은 관세 조건을 확정하고 투자를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미국이 핵심 시장인 이들 국가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이미 혼란 속에서 길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
일본 신임 총리의 초반 시험대
샤이마 칼릴(일본 특파원)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에 대해 강인한 "힘과 지혜를" 지닌 여성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주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는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 일본의 위치와 총리의 리더십을 가늠하는 초기 시험대가 될 것이다.
첫 의회 연설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의 방위비 증액 방침을 재확인하며 미국과 안보 부담을 더 많이 나누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 또한 이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며, 이번에도 주일 미군 주둔 비용에 대한 일본 측 기여 확대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주일 미군은 약 5만3000명 규모로, 해외 주둔 미군 중 최대 규모다.
또한 미국과 일본 정상 모두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내각이 협상한 관세 협정을 최종 마무리하길 바라고 있다.
토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의 자동차 대기업에 특히 유리한 내용으로,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 내 관세가 27.5%에서 15%로 인하하면 중국 업체보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다카이치 장관은 기존에 미-일 무역 협상을 이끌었던 아카자와 료세이를 그대로 유지하여 협상의 연속성을 이어가고자 한다.
이에 대한 대가로 일본은 의약품 및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미국에 5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쌀 등 미국 농산물 수입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미국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일본 농민들의 마음은 불안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을 쌓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와의 관계 역시 다카이치 총리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아베 전 총리는 마라라고 별장에서 함께 골프를 치며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카이치 총리 또한 이러한 개인적 외교술을 따라 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 이어지는 관세 협상
제이크 권(서울 특파원)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에게 현재 가장 시급한 사안은 미국의 관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추측이 난무하면서 관심은 잠시 이 문제에 쏠리고 있다.
지난 8월 백악관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평화 중재자)'라고 칭찬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 또한 2019년 이후 만나지 못한 김 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에 큰 기대감을 내비쳤다. 지난달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또 다른 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정당화하려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준비되고 있다고 볼만한 신호는 없다.
어찌 되었든, 이 대통령은 미국과 무역 협상을 타결해야만 한다. 한국 측이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하였음에도 한국산 수출품에 대한 미국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려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핵심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에 3500만달러 규모의 선투자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GDP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한국 정부는 이 같은 막대한 투자를 진행할 경우 금융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 측은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며 희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오는 29일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 협정에 서명할 수 있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