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한미 정상회담서 포착된 한국의 '환심사기 전략' 및 주요 성과
한ㆍ미 정상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지난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SNS에 게시물 하나가 올라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에 "대한민국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며 "숙청 혹은 혁명처럼 (보인다)"고 적었다.
이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다 실패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이 위기를 수습하려 한 시도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환심 사기 전략으로 접근해 백악관 집무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나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겪었던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한미 두 정상은 북한 문제에 있어 공통점을 찾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거듭 언급했다.
무역 및 방위와 관련한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두 정상 모두 공개적인 마찰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의 3가지 핵심을 살펴보았다.
이 대통령의 공치사 전략, 효과 발휘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대통령의 보좌진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경계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맞서 방어를 돕는 수만 명의 주한 미군에 한국이 '무임승차'를 한다며 비난한 바 있다. 아울러 한국의 국방 예산 및 한-미 무역 적자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좌파 성향 정치인으로 알려진 이 대통령은 미국 내에서 트럼프가 가장 경계하는 이미지의 소유자다. 과거 이 대통령은 한-미 군사 동맹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 바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일부 미국 보수 논객들은 그를 "반미" 성향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의 보좌진은 회담이 열리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정상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올라온 트루스 소셜 게시물은 한국 측을 더욱 긴장시켰다. 불길하게 들리는 해당 게시물은 지난해 12월 벌어진 계엄 사태 이후, 이재명 정부와 검찰이 윤 전 대통령 부부와 전 정부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벌이는 수사를 겨냥하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이는 한국 내 극우 세력뿐 아니라 일부 미국 내 인사들까지 거세게 반발해온 사안이다.
한국 측이 가장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바로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극우 음모론에 맞서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회담이 시작되자 트럼프 대통령인 해당 사안에 대해 언급하긴 했으나 이내 아마도 오해일 것이라며 일축했다.
이 대통령의 전략적 환심 사기 전략은 분명 효과를 발휘했다.
먼저 그는 새롭게 단장한 백악관의 "밝고 아름다운" 모습을 칭찬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구축한 개인적 관계를 높이 평가하며 남북 평화 중재에 힘써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남북)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나는 페이스메이커를 하겠다"고 발언했다.
나아가 북한에 트럼프 타워를 건설하고, 함께 골프를 함께 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는 다소 아첨처럼 들릴 수 있으나, 많은 게 걸린 이번 회담을 앞두고 한국 측이 선택한 전략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주한 미군의 역할 및 한국의 국방비 지출 등의 의제가 다루어질 예정이었다.
한국 측이 세운 제1 목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겪은 곤혹스러운 상황을 피하고 트럼프의 호감을 얻은 채로 회담을 끝마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김정은의 존재감 부각
한국 대통령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는 적대적 관계인 북한의 김정은과 자신이 얼마나 잘 지내는지, 그를 다시 만나길 얼마나 기대하는지 말하는 모습은 다소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 문제는 두 지도자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의제다.
북한 문제에 있어 이 대통령은 김정은의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전임자 윤 전 대통령과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먼저 김정은 이야기를 꺼낸 쪽도 이 대통령이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구축한 김정은과의 개인적 관계를 치켜세우며 한반도의 "피스메이커"가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간 평화로운 관계 구축을 위해 김정은과 대화하고 싶어 하나, 자신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실현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트럼프는 첫 임기 중 김정은과 3차례 만났으며, 현재도 김정은을 종종 언급한다. 자신과 김정은은 서한을 주고받으며 "사랑에 빠졌다"고 한 발언도 유명하다.
그러나 북-미 정상은 북한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합의는 끝내 이루지 못했다.
25일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과 많은 여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마도 말해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면서 "나는 그와 아주 잘 지낸다. 적절한 시기에 김정은과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문제는 김정은이 트럼프나 이 대통령과의 대화에 실제로 나설 의지가 있는지다.
북한은 대화를 원하는 이 대통령의 노력을 거듭 거부하고 있으며, 미국 측의 대화 재개 시도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트럼프와의 대화에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핵무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과거와는 다른 조건에서만 대화에 응하겠다고 시사한다.
이제 이 문제는 한미 양국이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사안이다.
무역 및 국방 의제, 대부분 언급되지 않아
한편 이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주요 목적은 양국 간 최근 무역 협정 및 주한미군 관련 사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회담에서 두 정상은 이러한 민감한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는 모습이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수입품에 대한 최대 25%의 관세율로 위협하자 한국 정부는 협상을 통해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약 487조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한 뒤에 나온 결과로, 이 중 1500억달러는 미국 조선업 지원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국은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업 강국이다. 반면 현재 미국은 조선업과 해군이 쇠퇴하고 있다.
정상회담 직후, 대한항공은 미국 '보잉'사의 항공기 103대를 구매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수익 처리 방식 등 무역 협상의 세부 사항과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현재 양국 관계자들이 막후에서 조율 중이다.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무역 "협상은 끝이 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일부 문제를 제기했으나, 우리는 입장을 고수"하며 양국 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도 배석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미국과 한국은 무역에 있어 서로가 필요하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하는 일, 그들의 제품, 선박 등 그들이 만드는 많은 것들을 사랑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석유와 가스가 필요하며, 미국은 거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백악관이 만지작거리는 카드로 알려진 미군 철수 및 감축 관련 질문에는 대답을 피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국방비를 충분히 지출하지 않은 채 미국의 보호를 이용하고 있고 비판한 바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공군과 주한미군이 공동 운영하는 오산 공군기지 등의 토지 소유권을 미국이 갖는 아이디어를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