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러시아에 6000명 추가 파병… 쇼이구 서기가 평양 자주 찾는 이유
북한이 러시아 쿠르스크주에 공병 병력과 군사 건설 인력 총 6000명을 파견할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17일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난 뒤 러시아 매체 기자들에게 "쿠르스크 재건을 위한 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 영토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기 위한 공병 병력 1000명과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파괴된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한 2개 여단 규모 군사 건설 인력 5000명을 파견하기로 했다는 것.
쇼이구 서기는 "이는 북측이 러시아에 보내는 형제적 지원의 일환"이라며 양측의 건설적 협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도 18일 "두 나라 간 조약의 범위 내에서 공화국이 협조할 내용을 확정하고 관련 계획을 수락했다"며 관련 소식을 전했다.
쿠르스크 지역은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은 러시아 서남부 접경지로, 러시아는 지난 4월 말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을 격퇴하고 빼앗긴 영토를 탈환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북한 파병군그 이 과정을 도왔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 국방정보국(DI)은 지난 15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쿠르스크에 약 11000 명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그 중 절반이 넘는 6000명 이상이 사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산했다.
쇼이구, 또 당일치기로 방북?
흥미로운 점은 쇼이구 서기가 올해 들어서만 벌써 3번째 '당일치기'로 평양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 방북은 지난 6월 4일 이후 불과 13일 만이다.
쇼이구 서기는 사실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지휘하는 인물로, 1만km나 떨어진 평양에 자주 갈 만큼 한가하지 않다. 즉, 그가 '당일치기'로 평양을 찾아야 할 만큼의 '절박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러시아 전문가인 정은숙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은 BBC에 "이번 만남은 양국이 아주 끈끈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또다른 후속 조치로, 러시아의 급박한 상황 속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만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는 "양측이 짧은 만남 속에서도 '북한군 공적 추모 사업' 등을 강조한 것을 보면 지금은 러시아의 절대적인 필요성 속에서 급박한 만남이 이뤄지는 모양새"라면서 "2006년 이후 고립되어 온 북한 김정은 역시 그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 역시 "아쉬운 것은 러시아"라는 데 동의했다. 북측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쇼이구 서기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급하게 평양을 왕래하고 있다는 것.
그는 "북한군의 의미있는 기여와 희생, 추가 파병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원하는 만큼의 군사 기술 협력 등이 지연되면서 푸틴 대통령이 급하게 쇼이구 서기를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북한 포로 송환에 대한 러측의 소극적 태도나 쿠르스크 탈환 성과 등에 대한 반대급부 이행 지연 등 역시 북측 불만으로 꼽힌다"고 부연했다.

북한이 얻는 것은?
러시아 철도청은 지난 9일(현지시간)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러시아 모스크바와 북한 평양 간 직통 철도가 오는 17일부터 운행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모스크바-평양 철도는 한 달에 두 번 운행하는데, 매월 3일과 17일 평양에서 출발해 각각 11일, 25일에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모스크바에서 평양으로 가는 열차는 매월 12일과 26일 출발해 매월 20일, 4일 평양에 도착한다.
러시아 철도청은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직통 철도 노선"이라며 "두 도시 간 거리는 1만㎞ 이상이고 여행에 8일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 열차는 러시아 하산,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치타,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키로프, 코스트로마 등의 도시에 정차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쇼이구 서기는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30년 이상 날지 못한 비행기도 조만간 다시 비행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직항 항공편 재개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러시아 철도청은 아울러 오는 19일부터는 평양과 러시아 극동 하바롭스크 간 직통 열차도 월 1회 운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북한과 러시아 간 철도 운행은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를 이유로 중단됐다가 이후 화물 운송만 소규모로 재개됐다.
지난해 6월 양측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직후 여객열차가 시범 운행을 시작했고 같은 해 12월부터는 두만강과 블라디보스토크 하산 지역을 오가는 열차의 정기 운행이 재개됐다.
이에 대해 정은숙 연구위원은 "모스크바-평양 간 기차 연결 소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러 간 기간 산업의 교류 확대는 물론 식량, 에너지, 경제, 과학기술 협력 등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교류가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북한 입장에서는 '과거의 소련'과 대등하게 협력하고 지도자끼리 신뢰를 쌓고 또 이렇게 큰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선전하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미국이나 중국, 한국, 일본에게 과거 '소련'과 대응하게 상부상조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면서 '정치적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다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잠수함 기술이나 초음속 미사일과 같은 최신 군사 기술 을 그렇게 썩 편하게 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그렇게 보면 그들을 진정한 신뢰 관계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두진호 센터장은 "이제 관심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언제, 어떤 식으로 러시아를 방문할 것인가'하는 점이라고 관측했다. 러시아가 아직 다자무대에 데뷔하지 못한 김정은 위원장을 위해 '판'을 깔아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는 "김 위원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한다면 양자 계기에 푸틴 대통령과 대등한 위치에 서서 북한의 전략적 지위 상승을 적극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미국 모두 '깊은 우려'
한국 대통령실 관계자는 17일(현지시간) 북한이 러시아에 공병 병력과 군사건설 인력 등 6천명을 추가로 파견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우려할 일"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캘거리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북한의 파견을) 지지하지 않는"며 이같이 답했다.
이에 앞서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 해외 노동자의 접수·고용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라며 "북러가 불법적인 협력을 지속하는 데 엄중한 우려를 표하고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역시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군사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 노동자와 군인들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게 깊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마찬가지로 지금 북한 정권도 노동력과 군인을 빌려주는 대가로 정권에 절실히 필요한 자금을 받기 위해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북한 노동자들은 북한의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러시아를 포함해 해외에 있는 이들 노동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 2397호를 위반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러는 지난해 6월 19일 푸틴 대통령의 방북 당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한쪽이 침략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면 다른 한쪽이 군사 원조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