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88억원짜리 바나나와 암호화폐 제국, 트럼프의 잠재적인 이해상충 논란

2024.12.09
바나나를 먹는 저스틴 선
Getty Images

중국 출신 암호화폐 사업가로, 최근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620만달러(약 88억원)에 낙찰받은 바나나 작품을 먹은 저스틴 선이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LF)'이라는 암호화폐 회사에 3000만달러(235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소식이었다.

WLF는 올해 10월 설립된 기업이기에 투자자들은 전망과 조건에 대해 경계하는 듯했다.

그러나 WLF에는 잠재적으로 마음을 끌 만한 포인트가 있었다.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홍보하는 회사와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의 이번 투자 덕분에 트럼프 당선인은 이제 이 벤처 기업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준점을 넘게 됐다. 트럼프와 그 일가는 대략 2000만달러를 이익을 거둬드릴 수 있는 상태이며, 앞으로 이 금액은 훨씬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자신이 만든 가상 자산과 관련해 미국 금융 당국으로부터 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선은 거래할 수도 없는 WLF 토큰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선의 이번 투자 소식에 정부 윤리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트럼프의 사업 제국이 나날이 확장하면서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사람들이 트럼프 쪽으로 돈을 움직이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수석 윤리 변호사였던 리처드 페인터는 "트럼프의 사업 제국이 계속 그 범위를 확장해가며 관련 (이해) 상충 문제도 상당히 커졌다"고 지적했다.

연설 중인 트럼프
Getty Images
지난 7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연설 중인 트럼프의 모습

트럼프 팀은 BBC에 보낸 성명서를 통해 이러한 우려를 일축했다.

트럼프 측의 캐롤라인 리빗 대변인은 "트럼프 당선인은 과거 (첫 임기 전) 대선에 출마하고자 수십억달러 규모의 부동산 제국에서 스스로 물러났으며, 대통령 급여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정치인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이익을 위해 정치에 뛰어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민들을 사랑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고 싶기에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백악관 복귀를 준비 중인 트럼프 당선인은 부정부패로 논란이 될 가능성 혹은 이러한 상황이 외부에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우려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새로운 기회

사실 트럼프 당선인은 이전에도 이해가 상충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 직면한 바 있다.

그의 첫 임기 시절, 워싱턴 DC 소재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은 로비스트, 외국 외교관, 동맹국들이 머물고 돈을 쓰는 장소가 되며 이러한 이해 상충 문제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가 됐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호텔이 트럼프가 대통령인 덕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간접적인 수익 창출 통로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트럼프는 대통령직으로 사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의혹과 함께 대통령은 외국으로부터 보수를 받을 수 없다는 헌법 규정을 위반했다는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개적으로 상장된 SNS 기업('트루스 소셜')과 암호화폐 기업에 사우디가 후원하는 LIV 골프 리그와의 가까운 관계까지 현재는 트럼프의 사업 제국이 과거에 비해서도 더 커진 상황이기에 트럼프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큰 규모의 자금을 훨씬 더 은밀히 이동시키기 유리해졌다고 말한다.

'트루스 소셜'를 운영하며 트럼프의 6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 대부분을 관리하는 기업인 '트럼프 미디어'사에 대해 연구하는 마이클 올로르게 뉴욕대 법학교수는 "그 규모도 커졌으며, 더 편리해졌다"고 설명했다.

"(과거 호텔을 통해서는) 고작 한정된 호텔 방 수만큼 예약할 수 있었죠."

그러나 이제는 트루스 소셜에서 외국 정부나 기업이 광고를 통해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이 트럼프와 가깝다고 믿게 함으로써 주가 급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미디어의 시장 가치는 70억달러를 웃돌고 있으나, 올로르게 교수가 말한 이러한 모습은 아직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미디어는 올해 광고 매출이 500만달러 미만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주식 시장의 '증폭' 효과를 고려할 때 그리 큰돈을 쓰지 않더라도 트럼프 미디어사 지분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트럼프 당선인에게 잠재적으로 상당한 이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게 올로르게 교수의 설명이다.

'트럼프의 암호화폐 친화적인 입장'

트럼프의 사업적 이해와 공적 의무가 가장 복잡하게 얽힌 곳을 꼽으라면 바로 암호화폐 산업일 것이다. 트럼프는 암호화폐 업계에 사적으로 더욱 깊이 발을 들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집권하면 더욱더 적극적으로 암호화폐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련 규제를 철폐하고, 정부가 암호화폐를 비축하는 비트코인 준비금 등을 마련하겠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정치 감시 단체인 '워싱턴의 책임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CREW)'의 버지니아 캔터 수석 윤리고문은 "향후 몇 년 안에 결정돼야 할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암호화폐 업계 규제 방법"이라면서 "현재로서 트럼프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암호화폐를 어떻게 규제하느냐에 따라 트럼프의 개인 재산 및 그의 향후 입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비트코인 투자를 옹호하는 '비트코인 레이어'사의 닉 바티아 설립자는 암호화폐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을 단순히 그가 자신의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나는 트럼프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권자를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바티아는 "트럼프의 암호화폐 친화적인 입장이 그의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 상충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
Getty Images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소재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소유한 많은 사업체 중 하나다

이번 주 트럼프 당선인은 가상화폐에 상당히 우호적인 인물인 폴 앳킨스를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위원장으로 임명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미디어와 같은 상장 기업들을 대상으로 사기, 내부 거래와 같은 문제를 단속하는 기관인 SEC는 앳킨스의 지도하에 앞으로는 다소 느슨한 법 집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SEC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 행정부의 암호화폐 산업 단속을 이끌었던 기관이다.

이번에 WLF에 투자하며 눈길을 끈 선 또한 지난해 특정 디지털 자산을 판매하면서 정부에 제대로 등록하지 않았다는 혐의 등으로 SEC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증권법 전문가인 존 커피 콜롬비아 법학대학원 교수는 앳킨스로 수장이 교체되면 SEC가 이 소송을 취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커피 교수는 "앳킨스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바로 규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그는 SEC가 제기한 여러 사건들의 범위를 크게 줄이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SEC가 지적한 의혹에 대해 가치가 없다는 입장인 투자자 선은 지난달 WLF 투자를 발표하며 SEC와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의 암호화폐에 대한 견해를 인용했다.

선은 X에 "미국은 블록체인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비트코인 (업계)은 @realDonaldTrump(트럼프 당선인의 X 아이디)에게 빚을 졌다!"고 적었다.

"트론(선이 창립한 블록체인 기업)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혁신을 주도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갑시다!"

규제 장치 부족

미국의 법에는 이해 상충에 대한 제한을 두는 규정이 거의 없으며, 대통령은 다른 공무원 및 내각 인사들을 규제하는 규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물론 헌법상 이론적으로 대통령은 재임 중 외국으로부터 그 어떠한 종류의 선물이나 보수도 받을 수 없으나, 연방대법원은 이미 트럼프의 첫 임기 중 벌어진 잠재적인 이해 상충과 관련한 소송 2건을 기각한 바 있다.

아울러 지난 여름에는 트럼프 관련 사건을 다루며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 기소에 대해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갖는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한편 과거 트럼프는 파트너들이 논란이 될까 우려해 관계를 끊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여러 수사와 소송에 휘말리면서 자신은 대통령이 되고 오히려 사업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제 또 한 번 백악관 입성을 준비하고 있는 트럼프는 관례대로 아직 윤리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이해 상충 관련 우려를 수긍할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트럼프 미디어의 지분을 계속 보유하겠다고 밝혔으며, 자신과 관련된 상품도 계속 판매할 것이고, WLF와 같은 벤처 기업에 이름도 계속 빌려주고 있다.

아울러 그가 소유한 플로리다 마러라고 클럽은 비싼 회원권을 기꺼이 살 수 있는 부유층들이 은밀히 대통령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로 여전히 남아 있다.

윤리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다시는 닫기 어려울 문을 연 것이라며 우려한다.

페인터 전 백악관 수석 윤리 변호사는 "트럼프는 자신은 이겼기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면서 "미래의 대통령들도 이를 보며 '우리'도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