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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전쟁 발발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에 처한 우크라이나

2024.05.28
대형 마트에 난 불길을 잡고자 노력 중인 소방관의 모습
Getty Images
지난 주말 소방관들은 러시아 활공 폭탄이 날아든 하르키우 소재 어느 슈퍼마켓의 대형 화재를 진압하고자 출동했다

우크라이나에선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됐다. 상황은 더없이 위험해 보이기만 하다.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이자 러시아와 인접한 국경 지역 하르키우는 공습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지난주 토요일 오후, 하르키우의 한 대형 슈퍼마켓과 원예 쇼핑센터 건물에 러시아 활공 폭탄 2개가 날아들었다. 당시 실내는 사람들로 붐비던 상태였다.

건물이 불길에 휩싸이고, 도시 전역에 검은 연기가 퍼지자, 해당 쇼핑센터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안드리 쿠데노프의 얼굴엔 절망의 그림자가 더해졌다.

“러시아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린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날씨도 좋고 원예 시즌도 막 시작해서 상점 안은 손님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상점엔 흙, 식물 등이 있었습니다.”

쿠데노프는 휴대전화를 꺼내 공격받기 전 매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얼마나 아름다운 꽃들이 있었는지 보세요. 이곳엔 군인은 없었고, 모두 민간인뿐이었죠.

이번 공격으로 수십 명이 다치고 최소 15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여전히 시신 수습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보통 전쟁이 나도 민간인들은 자신이 예전에 살던 삶의 방식을 보존하고자 노력하곤 한다.

원예 쇼핑센터에서 불이 나는 동안에도 시민들은 반려견을 산책시켰다. 하르키우 중심부 거대한 광장에 자리한 카페들도 공습 사이렌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경보가 울려도 영업을 이어 나갔다.

오페라 극장 건물 계단에선 10대 소년들이 스케이트보드 점프 연습을 하고 있었고, 소년들은 휴대전화로 틱톡에 올릴 춤을 추고 있었다. 오페라 극장 안 깊은 곳에 자리한 콘크리트 지하실에선 전쟁으로도 중단되지 않은 음악 축제를 위해 오케스트라가 한창 리허설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시민들이 아무리 무덤덤하게 평정심을 유지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가 약 2년 전 시작된 러시아의 침공 이후 초반 몇 달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는 사실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원예 쇼핑센터 타격은 이곳 북동부 지역과 동부 전선, 헤르손 근처 남부 지역을 노린 러시아 측 공세의 일부일 뿐이다.

이번 달 26일, 하르키우의 어느 극장 근처에서 춤을 추고 있는 우크라이나 학생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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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키우 일부 지역에선 강해진 러시아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일상을 이어 나가고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방어 능력은 외부자들, 특히 서방 동맹국의 결정에 달려 있다. 서방 세계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곳 하르키우를 비롯해 약 1000km에 달하는 전선의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또 다른 전략적 요인은 바로 전투에서 배우고 적응하는 러시아군의 능력이다.

러시아는 특히 방공 부문에서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약점을 반영한 공격을 이어 나가고 있다. 러시아의 공장들은 서방 세계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발전된 탄약과 무기를 생산하고 있다.

전쟁 발발 첫해 만에 러시아를 몰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이제 러시아가 더 이상 우크라이나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내기 바쁜 암울한 투쟁으로 바뀌었다.

이번 전쟁은 3년째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시작의 끝?

지난 2022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빠르게 승리하리라 예상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또한 마찬가지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거절하긴 했지만, 서방 세계는 대피하라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다른 NATO 회원국 국방 당국 모두 러시아가 2014년 시작한 일을 결국 마무리하게 되리라 봤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크림반도에 침공해 합병했으며, 동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주의 친러 분리주의자들의 승리를 도운 바 있다.

2014년 당시 형편없었던 우크라이나의 군대는 어느 정도 개선됐으나, 시리아 전쟁에 개입해 성공을 거두기까지 한 러시아는 너무나도 강한 상대 같아 보였다.

2022년 2월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로 몰려왔을 당시 우크라이나의 가장 좋은 기회는 NATO의 도움을 받아 무장 반란을 일으키는 것뿐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러시아는 동부 돈바스 지역과 남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육로’인 우크라이나 영토 깊숙이 들어와 점령했다. 그러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려던 푸틴 대통령의 시도는 굴욕적인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말, 키이우를 두고 벌어진 전투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군대를 뒤로 물렸다.

덴마크 북부 소재 격납고에 자리한 F-16 전투기 앞에 서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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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NATO 회원국으로부터 퇴역하는 ‘F-16’ 전투기를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NATO는 우크라이나도 맞서 싸울 수 있음을 인정했다.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러시아와의 대립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서방이 더 많은 자원을 지원할 만한, 예상치 못했지만 유용한 동맹국임을 증명해냈다.

그렇게 점차 우크라이나는 서방으로부터 점점 더 강력한 무기를 지원받기 시작했다. 물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머뭇거리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NATO가 군대를 직접 보내 개입하거나 우크라이나에 최첨단 군사 기술을 제공할 경우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상황을 우려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NATO 회원국에서 퇴역하는 구형 미국산 전투기 ‘F-16’의 우크라이나 제공을 허락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 실제 전투에 투입된 건 아니기에 러시아 공군 입장에선 아직 여유가 있다.

한편 서방 세계의 전문가 대부분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위협은 허풍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러시아의 핵심 동맹국인 중국은 그 어떠한 핵무기의 사용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동아시아에서 핵무기 경쟁이 벌어지는 건 중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다.

서방과 가까운 일본과 한국의 경우 현재 핵무기 억제 정책을 취하고 있으나, 위협의 정도가 심각해질 경우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허풍이 아니라며 푸틴 대통령이 이를 증명하는 상황이 벌어지긴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미국은 지속해서 우크라이나군이 자국이 공급한 무기를 러시아 본토 내부를 타격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러한 미 당국의 태도가 자신들의 한쪽 팔을 묶어두고 있다고 보기에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여름까지 서방 세계의 현대식 탱크와 장갑차 등을 포함해 인상적인 병력이 집결했고, NATO는 군인 수천 명을 훈련시켰다. 러시아의 전선을 돌파해 크림반도와 돈바스 간 육로 연결을 끊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러시아의 방어력이 너무 강했고, 공중 엄호 없이 NATO 식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지닌 가장 본질적인 약점은 바로 타국의 자금과 무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가 대적하는 러시아는 무기 대부분을 자급자족하며, 인구도 훨씬 많다. 1억 4천만 명이 넘는 러시아의 인구는 우크라이나의 약 3.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전사자가 수만 명에 이르는 이번 전쟁에서 이는 중요한 부분이다.

5월 23일 기준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지역(붉은색), 제한적으로 통제하는 지역(빗금 친 지역), 러시아가 통제한다고 주장하는 지역(노란색)을 표시한 지도
BBC
5월 23일 기준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지역(붉은색), 제한적으로 통제하는 지역(빗금 친 지역), 러시아가 통제한다고 주장하는 지역(노란색)을 표시한 지도

한편 미국에선 국내 정치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600억달러 지원 등을 포함한 ‘국가안보 관련 추가 예산안’을 요청했으나, 차라리 이 돈으로 멕시코와의 국경 지역 불법 이민자 문제 등 국내 문제 해결을 도모하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해당 예산안은 미 의회에서 수개월간 보류됐고, 지난 4월 24일이 돼서야 바이든 대통령은 서명할 수 있었다.

미군의 수송 능력이 엄청나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무기고를 다시 채우기까지는 그래도 몇 달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러시아 당국은 빠른 속도로 무기와 포탄을 생산하고 있다. 이미 러시아의 경제는 장기전 대비 태세를 갖춘 상태다.

NATO의 한 고위 관리는 “이건 생산력의 싸움”이라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필요하다고 알려진 물품 생산 능력 면에서 우리(서방)보다 더 많이 생산해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 세계가 가한 제재는 러시아 경제를 마비시키지 못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석유 수출길이 막히자 다른 시장을 찾았다. 또한 이란으로부턴 무인기를, 북한으로부턴 탄약을 사들이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경우 직접적으로 무기를 지원하진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러시아를 돕고 있다는 게 NATO의 생각이다.

해당 고위 관료는 “중국이 러시아의 전쟁을 실질적으로 돕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면서 “중국은 러시아의 방위 산업 기반 재건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기계와 초소형 전자 공학 기술은 방위 산업 강화로 직결되기에 러시아는 결국 탱크와 미사일을 더 많이 생산해 낼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중국과 러시아 간 관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중대한 지정학적 의미 중 하나는 바로 중국이 다시는 러시아의 하급 파트너국이 되지 않으리라는 점입니다.”

국경 지역

유치원 건물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비카 피스나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하르키우시 북동부 근처 작은 마을인 유르첸코베 지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프로리스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심리학자 피스나는 지난 1년간 러시아의 공세에 취약한 최전방 마을에 들어가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다행히 해당 유치원 건물엔 아이들이 없었다. 유르첸코베엔 다른 국경 지역과 마찬가지로 노약자나 환자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마도 해당 유치원은 이미 몇 달 전 버려졌을 것이다. 유치원 마당의 미끄럼틀과 놀이 기구 위로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오토바이에 침낭 등의 소지품을 싣고 이 마을을 떠나는 듯 보였던 한 남성은 어떻게 불이 났는진 모르겠지만 포탄이 떨어진 건 아니라고 했다.

화재의 원인이 무엇이든, 불길이 유치원 건물의 목조 벽과 양철 지붕을 뒤덮으며 타올라도 이 황량하고 고립된 마을에선 그 누구도 진압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유치원 건물 앞을 걷고 있는 남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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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첸코베 지역의 버려진 유치원 건물이 불길에 휩싸였을 땐 다행히도 안에 아이들이 없었다

이번 달 10일 국경을 넘은 러시아군은 하르키우주에서 줄곧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벨고로드 지역의 민간인을 보호하고자 완충지대를 구축하겠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당국의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는 지역이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이러한 공세로 최전선이 확대됐고,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 지역에 병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다른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빈틈을 노릴 수도 있다.

한편 BBC 취재진은 피스나의 소형 버스를 타고 국경 지역으로 들어갔다. 물론 현재 그저 잿더미로 변해가고 있는 국경 도시 보우찬스크에는 가까이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몇 km 떨어진 곳에서도 보우찬스크는 회색 구름이 성난 듯 어른거리고 여러 큰 화재로 높이 연기 기둥이 치솟는, 새로운 폭발로 인한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 지옥 같은 모습이었다.

비카 피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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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인 비카 피스나는 러시아 공세 위험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고자 최전방 마을을 돌아다닌다

피스나가 설득하려는 주민 명단 맨 위에 있던 여성인 리우보프는 떠날 준비가 됐다고 했다. 피스나가 쇼핑백 몇 개에 나눠 담긴 짐을 옮겨주자 앞마당 근처에 묶여 있던 리우보프의 개가 낯선 이들을 향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리우보프가 목줄을 풀고 소형 버스에 태우고 나서야 비로소 개는 조용해졌다.

피스나는 “나는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을 꼭 데리고 가라고 말한다”면서 “모든 걸 잃었을 때 반려동물은 위로가 된다”고 덧붙였다.

피스나는 소형 버스 안에서 반려견과 짐 옆에 앉아 몸을 웅크리며 “영혼이 아프다. 나는 이 집에서 40년 넘게 살았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포격 때문에 떠나는 것이냐는 질문에 리우보프는 “물론이다. 100m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다. 우리 집 창문이 전부 날아갔다”고 답했다.

문 틈으로 보이는 엠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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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카는 국경 지역에서 떠나도록 엠마와 남편을 설득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피스나는 다른 주민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곳에선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단단한 금속 문을 두드리자 한 할머니가 문틈 사이로 얼굴을 보였다.

피스나가 “안녕하세요, 당신이 엠마인가요?”라며 인사했다.

엠마는 물론 집 안쪽 보이지 않는 곳에 있던 그의 남편은 살던 집에서 대피하길 거부했다. 피스나는 이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어제 이 댁 근처에서 포격이 있었습니다. 매우 위험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위험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이사는 물론 복지 혜택이나 의약품 신청 등 모든 과정을 도와드릴 것입니다. 비용도 무료입니다. 심리적 지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저흰 가지 않을 거예요.”

“지금이 고비이기에 주민분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대피 이후 집으로 다시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1~2시간마다 포격이 일어나는 너무 위험한 상황입니다. 대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더 많은 포격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무료입니다! 무료로 지낼 곳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전 가지 않습니다.”

결국 엠마는 문을 닫아버렸다.

인쇄소 이야기

한편 지난 23일 오후, 러시아가 발사한 일련의 미사일에 당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하르키우 소재 어느 인쇄소에선 시신이 수습되고 있었다. 해당 공격으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크라이나는 방공망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배치하고 이용할지 어렵지만 선택해야만 했다.

이에 해당 인쇄소를 노린 미사일은 요격되지 않았다. 공격 전후 인쇄소 상공을 돌아다니던 러시아의 드론도 요격되지 않았다.

불에 탄 인쇄 공장에서의 제레미 보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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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방공망은 러시아의 하르키우 내 인쇄소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불길을 잡고 시신을 수습하고자 소방대원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하르키우주의 볼로디미르 티모스코 경찰청장은 분노를 참기 힘들어했다.

“모든 러시아의 미사일이 명중했습니다. 요격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벨고로드 지역에서 미사일이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40초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건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공 시스템’뿐입니다만, 우리에겐 그런 게 없습니다.”

티모스코 경찰청장은 러시아는 “파괴자들 … 그저 악”이라며 비난했다.

지친 모습의 소방대원
BBC
시신 수습을 위해 소방대원들은 건물을 샅샅이 뒤져야만 했다

며칠 후, 이 인쇄소에서 일했던 올레나 루팍은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루팍의 피부엔 파편 및 폭발로 인한 상처가 가득했다. 화재로인해 머리카락도 그을려 있었다.

루팍은 근처에 있던 인쇄 종이 운반대가 최악의 폭발을 막아준 덕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루팍은 벌어진 일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무척 감정적이었다.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다.

“이전엔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었는데, 이젠 하르키우에 있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저는 여전히 러시아가 테러 국가는 아니길, 오직 군사적 목표물만 타격하길 바랐지만, 저들은 민간인도 공격합니다.”

“우리를 도와준 미국이 고맙습니다. 독일 등 우리에게 베풀어준 모든 나라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희망이 없고 가진 게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장기전

루팍이 느끼는 것만큼 우크라이나가 그렇게 절박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번 달 하르키우에 있던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건 이해할 만하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실에 입원 중인 원예 쇼핑센터 폭발 사건의 피해자들도 두려움을 호소했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다리가 깔렸다는 비탈리는 “솔직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면서 “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반대편 침대에 있던 올렉산드르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협상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올렉산드르는 화재를 피하려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바람에 심각하게 다친 상태였다.

“우리가 반드시 저들을 무찔러야 합니다. 저들은 나쁜 의도로 이곳에 쳐들어왔습니다.”

한편 전쟁 초반만 해도 군대와 영토방위군에 자원하려던 이들이 줄을 이뤘다. 그러나 이 긴 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초반에 지원한 이들 다수가 사망했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청년들을 더 모집하고자 애쓰고 있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군인 대부분이 중년 남성으로, 이미 지쳐있다.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 군 지도부는 끊임없이 병력을 전진 배치시키는 식으로 군인들의 생명을 허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넌지시 말한 것만 봐도 우크라이나에선 여전히 엄청난 인원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고 있다.

군인 모집 포스터 앞을 지나가는 남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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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대부분 군대는 40대 남성들로 구성돼 있다. 이에 당국은 청년들을 더 많이 모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유럽 국가들은 각자 성공한 정도는 다르지만 더 많이 지원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 의회를 통과한 새로운 군사 지원 패키지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면 그래도 달라지는 게 있을 것이다. 즉 우크라이나는 계속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힘들 것이며, 11월 미국 대선 전 마지막 지원이 될 것이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한다면, 과연 그가 바이든 현 대통령만큼이나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줄진 알 수 없다.

한편 우크라이나 또한 무인기 전쟁 분야를 개척하며 자력으로 싸움을 이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폭발물을 실은 무인 선박을 통해 해상 무인기를 날려 러시아 군함을 침몰시키거나 흑해의 곡물 수출 경로를 다시 열기도 했다.

전쟁이 길어지면 상황이 이리저리 기울곤 한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새로운 무기를 얻기 전까지 기회가 있다고 판단해 더욱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 위험한 여름을 보내며 드는 한 가지 큰 의문이 있다. 러시아의 규모, 능력, 집념이 이번 전쟁의 전략적 상황을 바꿀만한 우크라이나의 패배로 이어질까.

우크라이나와 서방 동맹국은 러시아가 인적 및 물적 자원을 대규모로 써가며 제한된 정도의 영토 확보 이상을 해낼 전투력은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1년 전 여름을 생각해 보라. 지금의 러시아는 그때보다도 더 강해졌고,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상황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더욱더 깊이 진전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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