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떠난 병원에 남은 간호사들 '이제는 한계'...간호법 통과로 '당당히' 일할 수 있을까
전공의가 의료 현장을 대거 이탈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장기화되고 있는 의료 공백에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남은 의료인들은 전공의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그중 다수가 ‘간호사’다.
28일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이르면 내년 6월부터 진료지원(Physician Assistant, 이하 ‘PA’) 간호사의 의료행위가 합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합의로 마련된 이번 제정안으로 핵심 쟁점이었던 PA 간호사의 의료행위는 법적으로 보호되나, 그 업무 범위는 야당 입장을 수용해 시행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의료계 현장의 반발을 고려해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검사, 진단, 치료, 투약, 처치로 명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전공의가 떠난 지 6개월. 그동안 이들을 대체하고 있는 PA 간호사들의 법제화는 꾸준히 문제 제기되어왔다. PA 간호사는 수술이나 검사, 응급상황에서 의사를 지원하는 인력으로 전공의가 부족한 의료 현장에서 수술장 보조, 검사 시술 보조, 검체 의뢰 등 의사 역할을 일부 대신하기도 한다.
2010년 국내에 도입됐으나 PA의 의료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돼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 공백이 발생한 이후 ‘진료지원인력 사범시업’을 실시해 PA 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허용해 왔으나, 구체적 업무 범위를 정부가 아닌 병원장이 재량으로 설정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PA 간호사들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못했다.
수련병원에서 10년 넘게 PA로 근무 중인 익명의 간호사 A씨는 병원 업무를 모두 마친 후 곧바로 진행된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간호법 통과 소식을 처음 접했다. 간호법 통과 소감을 묻는 말에 A씨는 반가운 목소리로 “통과됐습니까?”라며 되물었다. 업무가 바빠 미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는 A씨는 “이제 일을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의협은 '의사 10만명 정당 가입 운동'으로 의사들의 정치 세력화에 나서겠다며 간호법은 “직역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공의 수련 생태계를 파괴하는 의료악법인 동시에 간호사들조차 위험에 빠뜨리는 자충수 법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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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교육 받고 투입?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1만165명이었던 PA는 불과 4개월 만에 57.4% 증가해 1만6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만큼 전공의의 빈 자리를 더 많은 PA가 채우고 있다는 의미다. 어떻게 몇 달만에 PA 간호사가 이처럼 늘어날 수 있었을까.
10년차 PA 간호사인 A씨는 “전공의에게 의존도가 높은 인기과일수록 PA가 해야 하는 업무범위가 좁다. 굳이 PA가 아니어도 전공의가 넘쳐서 자잘한 업무도 다 전공의들이 맡아서 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번 의료공백 사태 이후 갑작스럽게 해당 과의 PA들이 새롭게 배워서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러한 인기있는 과에서 전공의가 빠짐으로써 해당 과로 발령나는 PA도 많아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형 병원의 전공의들은 인기과 위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정형외과 등은 전통적인 ‘인기과’로 분류되지만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은 전공의들이 많이 찾지 않는 ‘기피과’에 속한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기피과'에는 자연스럽게 전공의들의 업무를 일부 대신할 PA가 의료 공백 이전에도 다수 존재했다. 하지만 PA가 비교적 적게 필요했던 인기과의 경우에는 전공의가 떠난 뒤 그 자리를 메울 PA조차 없어 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백찬기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 홍보국장은 “전공의들이 떠나고 나서 (인기과에는) 일반 간호사들이 주로 그 자리를 채우게 됐다”며 “그러다보니 이 문제가 간호사 전체의 문제로 확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련병원의 일반 간호사 B씨는 BBC에 “의사들의 업무를 사실상 우리가 하고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PA를 포함해 일반 간호사들도 병원 시스템 상에서의 의사 아이디와 패스워드 등을 갖고 처방을 낼 수 있다고 전했다.
일반 간호사들이 PA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심도있는 별도의 교육이 필수다.
고연차의 PA 간호사인 A씨는 “PA는 트레이닝을 받을 때 전공의 업무를 다 교육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PA의 업무는 전공의가 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간호대학을 다니며 배웠던 내용이 아닌 새로운 내용의 교육”이다.
그만큼 일반 간호사에게는 낯선 분야이기 때문에 A씨가 근무하는 병원의 경우 신규 PA는 총 두 달 간의 이론 및 실무 교육을 이수한다.
하지만 간협이 지난 20일 발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실태’ 결과에 따르면 의료공백 기간 일부 병원에서 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주도의 ‘진료지원 인력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151개 의료기관 중 83%는 임상 경력 3년 미만의 간호사를 PA 업무에 투입하고 있었다. 또 조사에 참여한 간호사들은 “진료지원 업무에 대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며 “업무 투입 전 30분~1시간 정도의 교육만 진행한다” 등으로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간호사 B씨는 “의료 공백 초반에는 환자 수가 줄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인력 충원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진료가 조금 활성화되고 있다보니 PA들이 필요해지기 시작했고, 3~4년차 경력직 간호사에게 신규 PA들이 하게 될 단순업무를 맡기자니 애매해서, 신규 인력들을 PA로 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PA로 투입된 신규 인력의 경우, 복잡한 작업보다는 단순 처치나 동의서 업무 등을 주로 한다고 설명했다.
PA 간호사 A씨 또한 “단순한 검사부터 수술까지, 의사 서명이 들어가는 동의서의 경우는 PA가 환자의 서명을 받으면 법적 효력이 없어서 (의료 공백 사태 후에는) 이 동의서가 교수님들에게 다 넘어갔다”며 “그래서 교수님들이 업무에 과부하가 온 부분이 있었는데, 국가가 응급으로 PA에 권한을 조금 넘겨주면서 간단한 시술 동의서는 현재 PA가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온다. 간호사 B씨는 “교수님들과 직접적으로 연락을 해야하는 상황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고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의료 공백) 전에는 전공의들이 중간에서 완충하는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간호사들이 교수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혀야 하는데, 여기서 오는 고충들이 되게 많거든요. 교수들도 높아지는 업무 강도에 피로도가 생기니까 (간호사를) 짜증스럽게 대하는 분들도 계셔서… 이해가 안 되는건 아니지만 우리도 의사 범위의 업무를 당연하게끔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의료 공백의 장기화로 인한 피해는 예비 간호사들에게도 번졌다. 병원들은 다음 해 필요한 간호사를 미리 한 해 전 채용하는데, 합격자들은 이듬해 2월 국가시험에 합격해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3월부터 현장에 투입되는 식이다. 채용 이후 현장 배치까지 대기 발령 상태인 예비 간호사를 ‘대기 간호사’라고 한다.
하지만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수도권 대형 병원들의 진료가 줄자 간호사 신규 채용과 발령도 함께 멈춘 것이다. 백 국장은 “순차적으로 내던 대기 간호사 발령을 못 내니까 올해 4학년이 된 간호대학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갔다”며 “학생들도 굉장히 불안에 떨게 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합당한 처우 필요해
의료 공백 초반 병상 가동률이 줄어들면서 대형병원을 포함한 수도권 병원들은 지난 3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병원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기도 했다.
백찬기 국장은 “전공의들이 많았던 대형 병원의 경우에는 경증 환자는 신규 환자로 받지 않기 때문에 기존 환자가 퇴원을 하면 공실이 되는데, 이렇게 병실 회전율이 떨어지니 간호사들도 강제로 무급휴가를 가게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환자 곁을 떠난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잘못한 것도 아닌데 피해는 고스란히 간호사들이 떠안아왔습니다. 그렇다고 마땅한 보상 체계가 있었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죠.”
간호사 B씨는 “간호부 같은 경우 환자 수가 많이 빠지면서 입원 환자가 적으니까 쉬고 싶은 사람은 쉴 수 있도록 한 달 간 희망조사를 해서 규칙적으로 무급휴가에 들어갔는데, 진료지원부서는 조직 자체가 수직적인 특징을 갖고 있어서 무급휴직을 사용하는 데 있어 강압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성과를 중시하다보니 무급휴가에 많이 들어갈수록 ‘윗선’에 잘 보일 수 있단 생각에 ‘휴가를 왜 안 쓰냐’는 압박을 받는 의료진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송금희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BBC에 “고물가인 현 상황에서 의정 갈등으로 인해 생긴 의료 공백 때문에 비용 절감의 목적에서 무급휴직 등으로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했다”며 “실질 임금 보장을 받아야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입원환자 수가 회복되는 등 다시 업무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는 병원에 남은 의료인들에게 또 다른 고충이 됐다. 송 수석부위원장은 “남아있던 의료인들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이 전공의들의 업무를 커버하고 있는데, 간호사들은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병원을 지키고 있는 전문의들도 밤에는 당직을 서고, 낮에는 수술에 들어가면서 버티고 있는데, 이들도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기 시작하겠죠."
"노조 조합원들에게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대병원 같은 경우도 응급의학과 의사가 4명 정도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또 일부 전화해보면 마취과 의사도 그만둬서 당장 수술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얘기도 들리고요.”
29일 총파업을 예고했던 보건의료노조는 앞서 올해 총액 대비 6.4% 임금 인상, 조속한 진료 정상화, 불법의료 근절 등을 사측에 요구했다.
송 수석부위원장은 “6.4%의 인상률을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100% 다 받아들여지기를 요구하는 건 아니”라며 “다만 현재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의료 공백이 발생한 기간 동안 헌신하고 노력했던 것에 대한 합당한 대우는 있어야하지 않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다만 28일부터 밤새 이어진 교섭 결과 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을 사실상 철회하며 62개 병원 사업장 가운데 조선대병원만 29일 오전 8시부터 파업에 돌입, 그 외에는 정상 운영된다고 밝혔다. 앞서 간호법 제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통과하자 보건의료노조는 환영의 뜻을 밝히며 "노사 교섭 타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10년 넘게 PA로 근무 중인 A씨는 이번 PA 법제화를 통해 의료사고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시하는 사람과 상의가 안 됐거나, 지시 받은 사람이 지시사항을 이해를 못했을 때 의료 사고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 법제화가 되면 ‘같은 팀원’이라는 생각을 갖고 더 목소리를 내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저는 수술장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지원해서 PA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교수님들도 한 번씩 그런 말씀하시거든요. ‘법적으로는 너희가 하는 일이 불법인데, 너희가 없으면 안 된다.’ 이제는 합법화가 된 거니까 ‘저희 법적으로 해도 됩니다’ 이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에 대해서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