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범죄 혐의' 체포 영장 받은 네타냐후...이스라엘 논란의 지도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받은 네 번째 세계 지도자가 됐다. 네타냐후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21일(현지시간) 발부된 체포영장은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날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취한 군사 행동과 관련이 있다. 전쟁 수행 수단으로서 민간인 기아 유발, 살인, 민간인들에 대한 고의적 공격 지시, 학살 등의 혐의가 포함됐다.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과 하마스 지도자 세 명도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이번 조치는 이스라엘 전역에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네타냐후의 가장 격렬한 정치적 적들조차 이번 결정을 비양심적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인 네타냐후에게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한 시점에 발생했다. 그는 현재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오랜 적인 이란과도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네타냐후 총리는 뇌물 수수와 부패 혐의로 이스라엘에서 형사 재판을 받고 있으며, 그는 해당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분쟁으로 인해 재판이 지연되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재판을 피하기 위해 가자 지구 전쟁을 장기화하려 한다는 주장도 일부에서 제기됐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어진 전쟁은 네타냐후 총리가 계획한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매주 대규모 시위를 잠정적으로 중단시켰다. 이 시위는 수개월간 이스라엘을 양극화시켰으며, 네타냐후 총리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를 국가를 분열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로 규정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현명한 정치적 생존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2022년 11월 다섯 번째 재선에 성공했으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우파적인 연립 정권을 이끄는 리쿠드당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12년 연속 총리직을 역임한 후 짧은 야당 생활을 거쳐 권좌에 복귀한 그의 극적인 행보는 지지자들 사이에서 '비비 왕(네타냐후의 별명)'이 정치적으로 무적이라는 믿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올해 75세인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국방을 책임질 최고의 인물이라는 ‘미스터 안보’ 이미지를 구축하며 여섯 번째 총리직을 맡고 있다.
- 하마스 지도자 사망했지만…가자 지구의 휴전이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 국제 인권단체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서 전쟁범죄 저지르고 있어’...전쟁범죄란
- 이스라엘이 구상하는 '새로운 중동'은 어떤 모습일까?
네타냐후 총리는 이전에 이스라엘의 수호자로 가장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은 수백 명의 하마스 무장 괴한이 가자 지구 국경을 넘는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당했다. 하마스는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인질로 가자 지구로 데려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에 대응한 전쟁을 시작했으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가 운영하는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소 4만4000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또한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여전히 억류하고 있는 100여 명의 인질을 석방하기 위해 휴전에 동의하라는 국내의 엄청난 압력에 저항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합의 실패에 대해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레바논의 이란 지원 단체 헤즈볼라로부터 1년 넘게 공격 받고 있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 북부에서는 최소 6만 명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그리고 지난 10월 7일의 공격 이후, 네타냐후의 지지율은 급락했으며 반대자들과 지지자들까지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정보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촉구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한편 야흐야 신와르 하마스 지도자와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수장을 처치하고, 헤즈볼라에 대한 지상 공세를 펼쳐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이 반등하기도 했다.
형제의 발자취
베냐민 네타냐후는 1949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1963년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시오니스트 운동가였던 아버지 벤지온이 교수직을 제의받으면서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했다.
18세가 되던 해, 이스라엘로 돌아온 그는 엘리트 특공대인 사예렛 마트칼에서 대위로 복무하며 5년 동안 군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72년 이스라엘에 착륙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된 벨기에 여객기 습격 사건에서 부상을 입었고, 1973년 중동 전쟁에 참전했다.
네타냐후의 형인 요나탄은 우간다 엔테베에서 납치된 항공기의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이끌다가 1976년 사망했다. 요나탄의 죽음은 네타냐후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전설로 남았다.
네타냐후는 형을 기리기 위해 반테러리즘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82년 미국 워싱턴에서 이스라엘 공관 차석 대사를 맡았다.
그의 대중적인 삶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식 영어 발음이 특징인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미국 TV에 자주 등장하며 이스라엘의 대변인이 되었다.
1984년 네타냐후는 뉴욕 유엔 주재 이스라엘 상임대표로 임명됐다.
권력 상승
네타냐후는 1988년 이스라엘로 돌아와 크네세트(의회) 리쿠드당 의원에 당선돼 외무부 차관이 되면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당 의장이 되었고, 1996년에는 이츠하크 라빈 암살 이후 조기 선거를 통해 이스라엘 최초의 직접 선출 총리가 됐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최연소 지도자이자 1948년 국가 수립 후 최초로 탄생한 지도자다.
그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오슬로 평화 협정을 맹렬히 비판했지만, 헤브론의 80%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넘기는 협정에 서명하고 점령지 서안 지구에서 추가 철수에 동의해 우파의 거센 반발을 산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17개월 일찍 선거를 소집했다가 네타냐후의 전 사령관이었던 에후드 바라크 노동당 대표에게 패배해 1999년 총리직을 넘겨야 했다.
정치적 부활
네타냐후는 리쿠드당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고, 아리엘 샤론이 그 뒤를 이었다.
2001년 샤론이 총리로 선출된 후, 네타냐후는 외무장관과 재무장관을 거쳐 정부에 복귀했다. 그러나 2005년 그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점령 철수에 반대하며 사임했다.
그러던 중 네타냐후의 기회는 2005년에 다시 찾아왔다. 샤론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기 직전, 샤론은 리쿠드당에서 탈퇴해 중도 성향의 새로운 정당인 카디마를 창당했다.
네타냐후는 리쿠드당 지도부를 다시 장악하고, 2009년 3월 두 번째로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전례 없는 10개월간의 서안지구 정착촌 건설 동결에 합의해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을 가능하게 했지만, 2010년 말 협상은 결렬됐다.
2009년에는 이스라엘과 함께 팔레스타인 국가를 조건부로 수용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지만, 이후 입장을 달리했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팔레스타인 국가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2019년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팔레스타인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은 네타냐후가 2009년에 다시 총리에 취임한 이후, 가자 지구에서 반복적으로 이스라엘을 충돌 상황에 몰아넣었다.
불과 12년 만에 네 번째로 발생한 분쟁은 2021년 5월에 발생했고, 네타냐후 총리를 물리치려는 정당들의 노력을 잠시 멈추게 했다.
이스라엘은 분쟁 기간 동안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의 지원을 받았지만, 네타냐후 총리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사이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2015년 3월 네타냐후가 의회 연설에서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과의 협상이 '나쁜 거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양국 관계는 최악에 달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네타냐후 총리의 방문을 방해와 피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와의 관계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 정책은 더욱 긴밀해졌고,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 전쟁 이후 점령한 예루살렘 동부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주장과 이를 지지하는 아랍 세계의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지만,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정치 및 외교적으로 큰 승리를 안겨줬다.
2020년 1월,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청사진을 "세기의 기회"라고 칭찬했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이를 일방적이라고 거부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문제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의견을 같이 했으며, 2018년 트럼프가 이란 핵 협정에서 탈퇴하고 경제 제재를 재개한 것을 환영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불충실하다고 비판했다.
현직 총리의 재판
2016년 이후 네타냐후 총리는 부패 수사의 대상이 됐고, 2019년 11월 세 건의 사건과 관련해 뇌물 수수, 사기,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부유한 사업가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언론의 긍정적인 보도를 유도하기 위해 청탁을 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마녀 사냥'의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2020년 5월 재판을 받기 시작했고, 이는 현직 총리가 재판을 받는 첫 번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