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임 총리' 앤디 버넘의 국정운영 구상은?
키어 스타머가 물러나고 앤디 버넘이 20일(현지시간) 영국의 신임 총리로 확정됐다.
버넘의 국정운영 구상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을 살펴봤다.
노숙 문제
먼저 버넘은 총리 취임 후 첫 연설에서 잉글랜드 내 "길거리 노숙 문제 근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노숙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수십 년이 족히 걸리거나, 심지어 해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왔다"며 "나는 더 이상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정부가 해결하고자 나선다면 고칠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이를 해결하고자 나섭니다."
연설 직후 발표된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향후 5년 동안 잉글랜드 내 1200가구에 주택을 제공하고, 최소 3000명에게 "밀착 지원"을 하고자 3억4000만파운드(약 6758억원)를 추가로 투입될 예정이다.
아울러 해당 보도자료는 조기 개입을 통해 궁극적으로 공공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연간 4만 명의 노숙인화를 막을 경우 납세자들의 세금 3억7000만파운드를 절약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지방 분권
버넘은 화이트홀(런던 중앙정부)의 권한을 축소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권력 재조정"을 약속했다. 아울러 맨체스터에 신설될 총리실 산하 기구를 통해 잉글랜드 각 지방 정부에 주택 및 교통 등 분야에 대한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구는 독일 헌법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 영국 전역에 걸쳐 "균등한 삶의 조건"을 촉진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또한 버넘은 권한을 "더 깊은 곳까지 아래로" 내려보냄으로써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기존 지방 분권 협정을 확대할 새로운 기회도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잉글랜드의 주요 도시 지역을 넘어 지역시장(메이어) 제도를 확대하려던 스타머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려는 그의 의도가 반영된 부분일 수 있다.
실제로 스타머 정부의 레이첼 리브스 재무장관은 차기 예산안에서 지역시장들에게 해당 지역에서 징수한 소득세의 일부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로드맵을 제시할 예정이었다.
상수도 및 에너지
한편 버넘은 영국 전역의 수도 및 에너지 분야의 "공공 통제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고자 그레이터 맨체스터 지역의 버스 네트워크 모델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해당 지역에서는 지방 당국이 요금, 운행 시간표, 노선 등을 통제하고, 민간사업자가 입찰을 통해 버스 운행을 맡는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을 상수도 및 에너지 분야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버넘은 자신의 구상이 수십억 파운드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는 상수도 및 에너지 기업의 완전한 국유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다만 런던과 잉글랜드 남부 일대를 담당하는 민간 수도기업인 '템스 워터'의 경우 직접적인 공공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지난 6월 이미 영국 정부가 빚더미에 앉은 이 기업에 대한 구제 금융안에 반대한 이후, 이미 추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주택
아울러 버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공 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에 비해 건설 속도에 가속화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그는 이에 필요한 자금 조달 방법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버넘이 현 정부의 부채 및 지출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 같은 공약을 이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잉글랜드에 향후 10년간 배정된 공공주택 예산 390억파운드 전액을, 공공주택 중 가장 저렴하고 보조금 혜택도 가장 큰 형태인 소셜렌트(사회임대주택) 건설에 할당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현재 공공주택 주택 예산의 일부는 임대료가 시세와 큰 차이가 없는 "부담 가능한" 주택과 내 집 마련 지원제도 등에도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버넘은 개발 중 녹지 파괴를 막고자 고밀도 주거지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한편 주택매수권(공공임대주택 세입자가 거주 중인 주택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 제한 등 주택 분야에서 버넘이 주장하는 다른 정책 중 일부는 이미 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들이다.
대인세
버넘은 소득세·부가가치세(VAT)·국민보험료의 기본 세율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지난 총선 노동당의 공약을 고수하겠다고 밝혔으나, 다른 세금에 대해서는 "공약 내 범위에서 어느 정도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 하원의원 재선 운동 기간, 소득세 비과세 기준액인 1만2570파운드를 인상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살펴보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영국이 노동에 대해서는 과하게 과세하고 부에 대해서는 과소 과세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만큼, 실거주지 외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자산을 매각할 때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버넘은 한 인터뷰에서 부유세 도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내각은 "조금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해야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다만 그는 공공 재정 현황을 꼼꼼히 검토할 것이며, "새로운 분열"을 일으키기보다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데"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2010년부터 줄곧 지방세 및 주택 구매자가 납부하는 인지세를 토지 가치에 부과하는 새로운 세금으로 대체하자고도 제안해왔다.
한편 총리 취임 직후 버넘은 기자들에게 올가을 첫 예산안을 앞두고 소득세 비과세 기준액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영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소득 중 첫 1만2750파운드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받는다. 그러나 역대 정부들이 이 한도를 동결해 온 탓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급여가 오를수록 국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되는 구조다.
이처럼 소득세 비과세 기준액을 동결하는 결정은 흔히 조용한 증세로 불린다.
영국 '재정연구소'는 이러한 동결 조치를 풀고 기준액을 올려줄 경우 정부의 세수가 연간 85억~90억파운드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버넘 역시 이 기준액 조정이 "어려울 것"이며, "상당한 파장을 미치게 될 것"임을 인정했다.
사회적 돌봄 서비스
버넘은 사회적 돌봄 서비스는 좀 더 보편적인 체계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총리로 선출된 직후 그는 돌봄 서비스 체계 개혁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재차 강조하며, 기자들에게 이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는 "임기를 끝내고 싶지 않다"며, 자신은 이 사안에 대해 "내 정치적 자본을 기꺼이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강조했다.
2023년 연설에서 그는 상속세 대신 "국가 돌봄 부담금"을 부과해 이 개혁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이 새로운 세금을 내게 되지만, "당연히 최고 부유층이 가장 많이 납부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지난 2024년, 싱크탱크인 '헬스 파운데이션'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방식의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돌봄 모델을 도입하려면 2035/36년까지 약 170억파운드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헬스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더 저렴한 대안으로는 스코틀랜드식 모델이 있다. 기본 돌봄 비용만 국가가 보장해주는 이 방식을 잉글랜드에 도입할 경우 2035/36년까지 필요한 추가 재정은 약 70억파운드다.
올해 메이커필드 보궐선거 운동 기간 버넘은 자신의 이전 입장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고 언급했으나, 사회적 돌봄 체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편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잉글랜드에서는 최저소득층 중 도움이 매우 절실한 이들에게만 국가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정치인들은 수년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동당은 야당 시절 이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으나, 집권 후 자금 조달에 대한 검토를 의뢰했고, 이 검토 결과는 2028년이 돼서야 나올 예정이다. 다만 버넘은 이를 올해 말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이민
한편 리시 수낙 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동당도 비자 요건을 강화해 이민자 유입 규모를 줄여왔다.
버넘 또한 메이커필드 선거운동 기간 동안 순이민 규모가 "더 줄어들어야 한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목표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가 당내 갈등을 겪을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이미 영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이 영주권 자격을 얻기 전까지 기다려야 하는 기간을 연장하는 제안이다.
올해 초만 해도 버넘은 노동당 의원들에게 이 기간을 연장할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경고한 안젤라 레이너 전 노동당 부대표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촉구했었다.
하지만 본인이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그는 스타머 내각의 샤바나 마흐무드 내무장관이 올해 초 발표한 이 계획의 "전반적인 취지"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와 고용
최근 몇 년간 보건 및 장애 수당 지출이 증가하는 가운데, 버넘은 영국의 복지 지출을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감축하고 싶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그는 수당 지급 수준이나 수급 자격 요건을 어떻게 변경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고용 지원과 "재직자 대상" 정신 건강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수급자 수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아울러 또한 16~18세 청소년들에게도 취업 기회를 보장해 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버넘은 이른바 '3중 잠금장치'라고 불리는 연금인상보장제도는 유지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매년 물가상승률, 평균 임금상승률, 최저인상률 2.5% 중 가장 높은 것을 골라 그만큼 연금을 인상한다는 정치적 약속이다.
기업 정책
버넘은 철강, 국방, 에너지, 농업 등 주요 분야에서 "자립적인 제조" 역량을 유지하고, 영국 기업들이 공공 계약을 수주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보궐선거 캠페인 당시, 그는 펍(선술집)과 공연장의 사업세율을 20% 인하하고, 이에 따른 세수 부족분은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소매업체들이 사용하는 교외 창고에 대한 세금 인상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정책 설명서를 배포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사업세 과세 기준액을 상향 조정해 지역 상권의 수많은 소규모 상점이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편하고자 한다.
외교 및 국방
버넘은 생애 안에 영국의 유럽연합(EU) 재가입이 성사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하면서도 "(EU 탈퇴 여부를 결정한 2016년) 국민투표를 지금 다시 실시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신 유럽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모색하고, EU와의 기존 협상에서 "이루어낸 진전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청소년 비자, 식품 규제,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와의 재연계 등 이전 정부로부터 현재 진행 중인 여러 협상을 물려받게 된 만큼 EU와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입장은 조만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한편 지난 6월 초 스타머 총리의 국방장관 존 힐리의 사임을 촉발했던 국방비 문제도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기 후반, 스타머 총리는 타 부문의 정부 지출을 삭감해 향후 4년간 군사비를 150억파운드 증액할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버넘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또한 주요 외교적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영국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모색해야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할 용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선거 제도 개혁
아울러 버넘은 영국의 기존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를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안이 노동당의 차기 총선 공약에 포함되도록 "당내 설득에 나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