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다이어리도 꾸미는데 휠체어는 왜 안 되나요?'
다이어리와 휴대전화를 스티커나 인형 등으로 장식하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와 '폰꾸'가 유행할 때, 휠체어 사용자인 김지우 씨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휠꾸'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24세인 김 씨는 뇌성마비로 어려서부터 휠체어를 탔다. 그리고 16살 때 자신의 일상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시작했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휠체어를 꾸미는 '휠꾸' 콘텐츠와 여행을 포함한 다양한 일상을 소개하는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인을 본 적 있어?...어디에도 없는 것 같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할 거야."
8년 전, 김 씨가 올린 첫 영상에서 그는 양 갈래 머리를 하고 등장해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그는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 "그렇게까지 원대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라며 웃었지만, 사실 지금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숏폼 영상(짧은 영상)을 막 소비하는 시대잖아요. 그 사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의 얘기도 쏙 끼워 넣고 싶었어요."
'BBC 글로벌 여성(Global Women)' 인터뷰이로 참여한 김 씨를 오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만났다.
휠체어를 꾸미는 이유
김 씨에게 다이어리와 휴대전화만큼이나 몸에서 뗄 수 없는 물건은 바로 휠체어다. 그는 휠체어가 자신의 "굉장히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채널에서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특정 주제로 휠체어를 꾸미고 '이달의 휠체어' 콘텐츠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휠체어를 예쁘게 꾸미면 보기 좋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 콘텐츠를 계속하다 보니 진짜로 휠체어가 좋아지더라고요. 무언가를 꾸민다는 건 시간을 들여서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든다는 거잖아요. 그건 애정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거든요."
김 씨는 '휠꾸'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는 일'에 담긴 여러 의미와 도전 과제들을 뒤로하고 '휠체어를 예쁘게 꾸미는 일'에만 초점이 맞춰질까 봐서다.
그는 "여성 크리에이터로서 (휠체어를) 꾸미고 보여주는 것에 대한 어떤 부채감 같은 것도 있다"라며 휠꾸 콘텐츠를 통해 "예쁜 휠체어를 가져라"라는 메시지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5월의 신부'를 주제로 만든 '웨딩 휠체어'의 경우 휠체어 이용자의 걱정을 듣고 만든 콘텐츠다. '웨딩드레스가 바퀴에 걸리면 어쩌지?', '부케는 어떻게 들지?' 등의 고민에 답을 해줄 수 있을 만한 '결혼 선배'들의 인터뷰도 함께 담았다.
그러고 나서야 웨딩 드레스를 입은 지우 씨가 생화로 바퀴를 꾸민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다.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무성애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이런 사람들에게 연애나 결혼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며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영상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달의 휠체어'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종종 휠체어를 꾸미는 영상을 올린다.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여러 사람과 함께 '휠꾸'를 해보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한번은 장애 청소년들이랑 휠꾸 워크숍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근데 한 친구가 (휠체어 꾸미는 게) 너무 재밌었고 친구들이 자기를 부러워할 것 같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너무 큰 선물 같은 말이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10살 때는 그렇게 말 못했을 것 같거든요."
'외로운 줄도 모르고, 외로웠던'
"부모님은 매주 주말마다 저를 데리고 나가서 다른 아이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하게 하셨어요. 그렇게 자라면서 저는 제 장애가 숨겨야 할 것이 아니고, 부정적인 반응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다는 걸 배웠죠."
김 씨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전교생 대부분이 비장애인이었던 일반 학교에 다녔다.
"어렸을 때는 외로운 줄도 모르고 좀 외로웠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은 다 장애가 없는데, 저만 휠체어를 타고 있었으니까요. 저도 친구들이랑 똑같이 어울리지만, 동시에 그들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잖아요."
그랬던 김 씨는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유튜브를 통해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이걸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이런 이야기가 아무도 모르는, 외딴섬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는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고 또 필요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튜브를 시작할 무렵 전동 휠체어를 처음으로 타게 되면서 그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졌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더 많아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상이 확 넓어진" 기분이었다.
그는 이전까지 수동 휠체어를 탔는데, 장애로 인해 팔로 밀어서 이동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22살 때는 아버지와 함께 홍콩으로 첫 해외 여행을 나섰다. 심지어 아버지 없이 돌아다니는 자유시간도 가졌다.
"딱 5시간 동안 (홍콩을) 혼자 돌아다니면서 '뭐야, 생각보다 별거 아니잖아. 별일 안 일어나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어요."
'해보니까 되네'
김 씨는 지금까지 호주와 미국,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 10개국 정도를 여행했다.
그중에서도 교환학생으로 간 호주에서의 서핑은 잊을 수 없는 경험 중 하나다. 다른 사람들이 서핑할 동안 해변에 앉아 있을 생각으로 간 그에게 강사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수영복을 건넸다.
"너 하나 때문에 이걸 다 바꿀 수는 없어" 또는 "위험하니까 안 돼"라는 말을 들을 때가 많았던 그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서핑이 얼마나 위험해요. 물에서 하는 건데. 근데 사람들이 '네가 하고 싶으면 물에 들어갈 수 있어'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파도에 태워준 순간, 그때가 또 한 번 세상이 넓어진 순간이었어요."
올해 출간한 여행 에세이 '의심 없는 마음'의 제목도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그때 해변에서 내가 파도를 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 나를 의심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거예요...저는 항상 '네가 할 수 있겠어? 괜찮겠어?'라는 걱정의 탈을 쓴 배제만을 경험했었는데,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라는 의심 없는 말을 마주하니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더라고요."
마찬가지로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에서 교수님의 영상 과제 피드백에 장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에도 놀랐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지우야, 너는 참 잘해'라거나 '특별한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 속에는 항상 의심이 있었어요. 내가 장애가 없었더라면 나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장애인이라서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건 아닐까?...계속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거죠."
지난해 김 씨는 10대부터 60대까지 휠체어 탄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 '우리들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를 출간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관통하는 문장이 "해보니까 되네"라고 했다.
"장애를 가지고 살면, 또는 장애가 없더라도 어린 여성으로서 주변으로부터 '왜 그렇게까지 해'라는 피드백을 들을 때가 있잖아요.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스스로 나의 한계를 정해놨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사실 해보면 되거든요. 너무 멀리 있고 커 보여서 무서운 거지, 작게 쪼개서 한 걸음씩 나가면 안 될 게 없단 말이에요."
추가 보도: 최유진, 라라 오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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