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편집에 트럼프에 사과 … 배상은 거부
BBC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1년 1월 6일에 한 연설의 일부를 편집하여 방영한 '파노라마(Panorama)' 다큐멘터리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다만 트럼프 측의 배상 요구는 거부했다.
BBC는 해당 편집이 "트럼프 대통령이 폭력 행위를 직접 촉구하는 듯한 잘못된 인상을 줬다"고 인정하며, 2024년 방영된 해당 다큐멘터리를 다시 송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측 변호인단은 해당 프로그램 속 언급을 철회하고, 사과 및 배상하지 않을 경우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번 논란의 여파로 팀 데이비 BBC 사장(Director-general)과 데보라 터네스 뉴스 보도 부문 책임자(CEO)는 지난 9일 사임했다.
BBC 뉴스는 백악관 측에 의견을 요청했다.
이번 공식 사과는 영국 일간 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2022년 BBC 뉴스나이트를 통해 방송된, 유사하게 편집된 또 다른 영상을 공개한 지 몇 시간 만에 나왔다.
BBC는 지난 13일 저녁 정정·설명란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편집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이후 파노라마 프로그램을 재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도치 않았으나, 우리의 편집이 연설의 서로 다른 부분을 발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연속적으로 이어진 연설처럼 보이게 했음을, 그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폭력 행동을 직접적으로 촉구하는 듯한 잘못된 인상을 주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BBC 대변인은 지난 9일 트럼프 측 법률팀이 보낸 서한에 대해 자사 법률팀이 답신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와는 별개로 사미르 샤 BBC 이사회 의장이 백악관에 개인적으로 서한을 보내어 2021년 1월 6일 연설 내용을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과정에서 편집된 방식에 대해 대통령과 백악관에 유감을 표명했다"고 한다.
또한 "BBC는 해당 영상이 편집된 방식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하나, 명예훼손 소송의 근거가 있다는 데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2021년 1월 6일, 트럼프는 "우리는 국회의사당으로 걸어갈 것이며, 우리의 용감한 상원 및 하원의원들을 응원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50분 뒤에는 "그리고 우리는 싸울 것이다. 우리는 지옥처럼 싸울 것"이라며 연설을 이어갔다.
그리고 파노라마 프로그램에서는 마치 그가 "우리는 국회의사당으로 걸어갈 것 …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싸울 것이다. 우리는 지옥처럼 싸울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설이 "난도질"당했으며,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방식으로 방영되었다고 주장했다.
BBC는 지난 9일 트럼프 측 법률팀으로부터 서한을 접수했다. 논란이 된 다큐멘터리에 대한 "전면적이고 타당한 철회" 및 사과, "트럼프 대통령이 입은 피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서한은 BBC가 이에 대해 오는 14일 오후 10시(GMT)까지 답변하길 요구하고 있다.
BBC는 트럼프 법률팀에 보낸 서한을 통해 자사에 답해야 할 사안이 없다고 판단하는 5가지 핵심 논거를 제시했다.
첫째, BBC는 해당 '파노라마' 다큐멘터리를 미국 채널에 배포할 권리가 없었으며 실제로 배포하지도 않았다. 해당 다큐멘터리가 BBC iPlayer에서 제공되었을 때도 시청 가능 지역은 영국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둘째, 해당 다큐멘터리는 트럼프에게 어떠한 손해도 초래하지 않았다. 그는 직후 재선에도 성공했다.
셋째, 해당 영상은 오도할 의도가 아닌, 긴 연설을 간략히 줄이고자 편집된 것이었으며, 악의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
넷째, 해당 클립은 단독으로 해석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시간 분량 중 12초 정도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여러 의견들도 프로그램에 함께 담겼다.
마지막으로, 공적인 사안에 대한 의견 및 정치적 발언은 미국의 명예훼손법상 강력한 보호를 받는다.
BBC 관계자는 BBC는 내부적으로 이러한 논거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편집과 관련하여 새롭게 제기된 주장
한편 지난 13일 오전, BBC는 논란의 파노라마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 2년 전에도 트럼프의 2021년 1월 6일 연설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방식으로 편집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2022년 뉴스나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된 것으로, 파노라마 프로그램의 연설 편집과는 약간 다르다.
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국회의사당으로 걸어갈 것이다. 우리의 용감한 상원 및 하원의원들을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싸울 것이다. 우리는 지옥처럼 싸울 것이다. 지옥처럼 싸우지 않으면 더 이상 여러분에게 나라는 없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담겼다.
이어 국회의사당 폭동 장면과 함께 진행자 커스티 워크의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했다"는 내레이션이 삽입되었다.
1월 6일 폭동을 "쿠데타 시도"라고 표현한 뒤 외교직을 사임하고 트럼프 비판자로 돌아선 믹 멀베이니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해당 클립이 트럼프의 연설을 "이어 붙였다"고 지적했다.
영상 속 '우리는 싸운다. 그리고 지옥처럼 싸운다'는 대목은 실제로는 연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발언이나, 이 영상에서는 마치 두 부분이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13일 텔레그래프의 이같은 보도에 대해 BBC 대변인은 BBC는 "최고 수준의 편집 기준"을 갖고 있으며, 해당 사안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변호인단의 대변인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BBC가 트럼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패턴을 거듭 보여왔음이 이제는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논란은 영국 일간 신문 '텔레그래프'가 BBC의 편집 기준 위원회에서 독립 외부 자문위원을 맡았던 마이클 프레스콧이 작성한 내부 문건을 입수하여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해당 문서에는 그 외에도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사안에 관한 BBC의 보도, BBC 아랍어 서비스의 이스라엘-가자 전쟁 보도 등에 대한 지적도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