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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나를 딥페이크 음란물로 만든 날'...그 후 내게 벌어진 일

2025.01.24
학교 앞에 서 있는 여성
BBC/최유진
3월 새 학기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교사들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이다

*주의: 이 기사에는 보기 다소 불편한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엄마, 우울해하지 마세요. 엄마 죽으면 안 돼요."

지난 11월 이가은 씨(가명)는 8살 난 아들이 자신에게 자주 건네는 말에 자꾸 눈물이 난다. 티 내지 않으려 해도 깊게 드리워진 우울감은 어린 아들에게도 숨길 수가 없다. 10년 차 교사인 그는 현재 7개월째 병가 중이다.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가은 씨는 지난해 3월 한 학생을 통해 자신의 사진이 나체와 합성된 딥페이크 음란물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200명 규모의 텔레그램 방에는 '지인능욕', '선생능욕'이라는 해시태그가 난무했고 성적으로 희롱하는 메시지도 오갔다.

학교 학생들은 성 착취물이 된 가은 씨 사진을 상당수 돌려본 것으로 추정됐다. 피해 교사는 그 외에도 3명이 더 있었다.

경기도 소속 중학교 영어 교사 박세희 씨(가명) 역시 9개월 전, 교사 생활 10여 년 중에서 가장 괴로운 일을 당했다.

어느날 한 학생이 고민이 깊게 드리운 얼굴을 하고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세희 씨의 사진이 있었다.

원숭이처럼 생긴 동물 두 마리가 성관계를 하는 장면에 세희 씨와 알 수 없는 남성의 얼굴이 합성돼 있었다. 사용된 사진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메신저에서만 쓰던 것이었다.

제목은 더 충격적이었다.

'지 아들이랑 하는 박세희'.

"진짜 막 호흡도 가빨라지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주먹으로 베개를 막 내리치고, 그 분노를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비참하고 내 아들까지 들먹였다는 생각에…"

앳된 얼굴의 가해자들

지난해 8월 말, 특정인의 실제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성 착취물이 초·중·고등학교까지 침투했다는 뉴스가 한국을 뒤흔들었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딥페이크물을 공유해온 수백 개의 '학교방'이 확인된 것.

기술 진화와 각종 플랫폼 발달로 누구나 쉽게 성 착취물을 접하고 만들 수 있게 됐다. BBC 코리아가 경찰청에 확인한 결과 딥페이크 성범죄 경찰신고건수는 2024년 1202건을 기록했다. 2021년 156건에서 약 7-8배로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이런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들이 대부분 청소년이라는 것.

경찰 발표 자료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피의자 총 573명 중 10대는 381명으로 80.4%를 차지했다. 심지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촉법소년도 100명에 달했다.

수법 역시 대담하다. 30대 여성 한윤지(가명) 씨는 수개월 전 30여 명에게서 인스타그램 쪽지를 받았다.

그들은 윤지 씨의 신상정보를 계속 언급하며 '너 이 사람 맞지?', '너가 성욕처리 담당이라며?'라는 등 성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알고 보니 한 텔레그램 방에서 윤지 씨의 일상 사진을 딥페이크 음란물로 만들고 '피해자를 직접 능욕하자'고 했던 것.

윤지 씨는 그 순간을 "너무너무 공포스러웠다"며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거나 누군가와 같이 사진을 찍을 때도 불편하고 힘들게 됐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볼까 봐 모든 일상이 두렵게 됐다"고 했다.

특히 한 가해자는 윤지 씨의 딥페이크 사진 위로 본인의 자위 영상까지 보냈다. 경찰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 가해자는 10대 소년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많이 당혹스럽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까지 나왔어요."

딥페이크 성범죄 경찰신고건수는 2024년 1202건을 기록했다. 2021년 156건에서 약 7-8배로 증가한 수치다. 그림 속 대화(하이욤/누구세요?/성욕 처리 담당이라면서?)는 피해자들이 실제 확인한 내용을 재구성한 일러스트.
BBC/Andro Saini
딥페이크 성범죄 경찰신고건수는 2024년 1202건을 기록했다. 그림 속 대화는 피해자들이 실제 확인한 내용이다

범죄의 공간이 학교인 만큼 교사들 역시 범죄의 타깃이 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해 9월 긴급 '딥페이크 성범죄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총 2492건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와 유치원, 특수학교에서도 피해 신고가 잇따랐다. 직·간접적인 피해자는 총 517명으로, 이 중 교사는 20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BBC는 이런 부류의 대화방들을 다시 확인해 봤다. 6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텔레그램 외에 트위터, 구글 등에서 '지인능욕' 혹은 '교사능욕' 등의 키워드를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학생들과 유독 끈끈하게 지냈던 세희 씨는 제자가 자신들을 범죄 타깃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아이들에게 종종 하던 아들의 이야기도 떠오르면서 아찔해졌다.

"저는 이 학생들이 1학년 시절부터 3년째 맡아서 같이 생활해 온 상황이었어요. 아이들을 매우 예뻐했고 아이들도 저를 잘 따라와 줬고 관계가 좋았어요. 예쁜 아이들로 정평이 나 있는 학년이었다 보니 충격이 상당했어요."

그는 반마다 돌며 '선생님은 신고하지 않을 테니 자백할 기간을 주겠다'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끝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피해를 겪고도 교단에 나가야'

피해를 겪고도 교단에 서야 한다는 점은 대부분의 교사 피해자가 겪는 어려움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르치는 어린 학생들을 용의선상에 올리는 심리적 부담이 크다.

교사로서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버티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은 씨 또한 피해 사실을 인지했지만 본인이 맡고 있던 3학년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견뎌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학생들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아이들이 휴대폰을 잡고 있는 장면만 봐도 덜컥 겁이 났다.

"눈들이 그냥 눈처럼 안 보이고, 나를 이렇게 쳐다보기만 해도 저 아이가 혹시 그 사진을 봤나, 나인지 확인하려고 저렇게 보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러니까 아이들 눈을 보면서 똑바로 수업을 못 하겠더라고요."

피해를 인지해도 즉각 분리 조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피해 교사들은 가해 학생이 있을지도 모르는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BBC 코리아가 지역 교육청 등에 확인한 결과, 교사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분리조치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았다.

학생이 피해자일 경우에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 규정에 따라 7일(주말 포함)까지 일단 즉시 분리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교사들의 경우에는 긴급 병가 외에는 관련 법적 조치가 없다. 병가 역시 일주일 이상 공무상 병가를 인정받으려면 교권보호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부산 교육청 성 인식 개선 담당 김순미 장학사는 적용할 지침이 없다는 설명이다.

"학생과의 즉각 분리나 분리 일수 등을 명시해 놓은 법이나 매뉴얼은 없습니다. 그저 '학생 지도에 대한 고시'에 학습권 침해를 하면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바꿀 수 있다', '일시 보호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등의 내용은 있습니다. 학생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한 방법인데요. 가정학습을 요청하는 것도 있지만 이마저도 학부모가 거절하면 해결이 안 돼요."

김 장학사는 "지역 단위의 교육청 입장에서는 이와 관련해 통일된 정부발 지침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아직은 이런 건 내려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피해가 심해도 3월 1일 자 정기 발령 외에는 학교 전근 신청도 실질적으론 잘 이뤄지지 않는다. 수개월을 그 학교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은 씨도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4~5월 정도에 다른 교육청 산하 학교로 가는 관외전보 신청을 했지만 12월 초까지 애를 태워야 했다. 그는 "정말 이 딥페이크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 교육 당국과의 싸움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반면 지난 6개월간 10여 차례에 걸쳐 실태 조사를 거친 교육부는 교사들의 피해 회복 지원 정책 관련해서는 이미 정비가 잘 되어 있다는 입장이다.

학교 딥페이크 이슈를 담당하는 교육부 정일선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서이초(교권 침해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문제 이후로는 학생한테 딥페이크 포함해 피해를 받았을 경우에는 긴급병가 6일 포함해 공무상 병가, 상담심리지원, 예산 등이 매뉴얼 상 아주 잘 돼 있다"며 "개별 사례 차이는 있어도 대다수가 느끼는 시스템의 부재는 아니라고 본다"라고 답변했다.

정 담당관은 이 외에도 교육부가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폭력예방교육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바뀌긴 할까요'...제자리걸음 하는 경찰 수사

피해자들은 경찰의 대응과 도움이 충분치 않았다고도 했다.

가은 씨 역시 주변 학생들에게 사진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 학생을 용의자로 의심했지만 경찰 측 대응은 당혹스러웠다. 학생의 휴대폰을 포렌식해 불법 촬영물을 포함, 수백 장의 사진을 찾아내는 데까진 수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가은 씨에 따르면 경찰은 그 속에 피해 선생님들의 사진은 없었다며 수사를 종료했다. 그 외에 PC라든가 다른 디지털 기기에 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다며 경찰은 미제사건으로 등록했다.

"(찾아낸) 사진 속 인물 중에 선생님들이 있는지 확인 여부를 그 학생에게 했어요. 학생이 없다고 하니 종료를 한 거예요. 제가 직접 확인하면 안되냐고 물어봤지만 '원칙상 불가하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지난 가을 학교발 딥페이크가 공론화되자 가은 씨는 '재수사해보겠다'는 수사관의 전화를 받았다.

"그냥 웃음이 나왔어요. 그 이후 연락이 온 건 아직 없습니다… 바뀌긴 할까요?"

경찰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통상 저희가 다 확인을 해서 보여주고는 있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가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하고 정보가 혼재되어 있으면 그런 경우에는 다른 사람 것을 유출하면 안되니까 보여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피해자가 직접 범인 추적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인천 고등학교 소속 한지희 씨(가명)는 경찰 수사가 미진하자 직접 증거 수집에 나섰다.

지희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해당 계정을 계속 모니터링했다.

"본인의 (성적) 취향이 반영된 정말 리얼한 딥페이크 상반신 사진을 비포 애프터로 올려요. 원래 원본과 본인이 합성한 거 이렇게 비교할 수 있게끔... 마치 작품을 올리는 것처럼 하는 그 행동이 역겨웠고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는 원본으로 쓰인 사진이 한 교실에서 찍혔다는 점에서 착안해 해당 교실의 모든 의자에 앉아 보며 불법 촬영된 사진 구도를 일일이 분석했다.

결국 한 고3 학생을 피의자로 지목할 수 있었고 1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제출하자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의 충격으로 병가 중인 지희 씨는 "디지털 성범죄다 보니까 증거 인멸하기도 너무 쉽고, 가려져 있어서 피해자들이 목소리 내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알아내야 되는 상황이 참 속상했다"고 했다.

피해자가 직접 범인 추적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경찰 수사가 미진하자 직접 증거 수집에 나선 선생님들을 묘사한 일러스트.
BBC/Andro Saini
피해자가 직접 범인 추적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인천 고등학교 소속 한지희 씨(가명)는 경찰 수사가 미진하자 직접 증거 수집에 나섰다

물론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범인을 특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즉각적인 증거수집이 어렵고 해외 사이트를 통한 범행일 경우 추적에 어려움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실제로 사건 접수 건수 1202건 중에 검거 피의자수는 682명이다. 막상 구속까지 간 사례는 40건 정도(전체 건수대비 3.3%)에 불과하다.

피해자 대응 관련 변화 여부를 묻는 BBC 코리아 질문에 경찰청은 "위장 수사관 양성, 사이버수사 전문화 교육 등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수사 착수 및 딥페이크 영상물 삭제 차단 등으로 피해자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서면을 통해 밝혔다.

다만 전국 시도경찰청 소속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은 학교발 딥페이크가 공론화 된 이후에도 2024년 12월 기준 25개 팀 127명으로 변화는 없다.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스쿨 팁페이크' 사태가 터졌을 당시 텔레그램과 같은 암호화된 비공개 메시지 플랫폼과 각종 AI 기술은 사태의 중심으로 지목됐다. 온라인 공간과 각종 앱에 익숙한 요즘 청소년들이 디지털 기술을 악용한 성범죄를 쉽고 빠르게 저지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범정부 딥페이크 TF는 이런 딥페이크 생성억제나 텔레그램과의 협력 등 관련 방안을 내놓았다. 우후죽순 불어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중요한 조치이긴 하다.

하지만 기술 진화와 함께 범죄 수법도 계속 진화한다. 텔레그램이 사라져도 다른 것이 나타날 수 있다는 소리다.

BBC와 인터뷰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박성혜 팀장
BBC/최유진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박성혜 팀장은 지금의 디지털 범죄 양상을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고 묘사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인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디성센터') 박성혜 삭제지원 팀장은 지금의 디지털 범죄 양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도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모니터링과 삭제 기술을 고도화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이 기술에 대응하려면 쉽지 않아요. 이건 '창과 방패와의 싸움'이라고 내부에선 표현해요. 새로운 기술이 두세 달 만에 막 만들어져서 창이 되고 저희가 또 그거에 대해서 막 새로운 어떤 기술을 만들어서 방패를 만들고, 이런 게 반복되는 거죠."

무엇보다 방법을 안다고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결국 비뚤어진 인식 변화 없이는 디지털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박 팀장은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해서 소비하고 판매해도 된다는 인식이 가장 기본적이고 원론적이면서도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5년 전 N번방 디지털 성범죄를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대표 역시 "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주는 연대감, 연대 의식 이런 것 때문에 더 아무렇지 않게 쉽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들의 신상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공유하면서 '얘 학교 찾아가서 강간하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노는 거예요. 범죄가 허용된 온라인 공간에서는 도덕적이고 법적으로 하면 안 되는 행위를 다 할 수 있는 겁니다."

원 대표는 언론이나 사회적 관심이 커지는 시기를 두고 가해자들이 '보릿고개'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몇 주 뒤면 자신들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들 거라는 걸 비유한 표현이다.

"딱 그때만인 거죠. 가해자들이 N번방 사건을 지나면서 체득을 한 거예요. 사람들의 관심만 꺼지면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디지털 성범죄 자료를 볼 수가 있다. 지금은 조금 더 은밀하게 공유해요."

단순히 십대들의 문제?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 관련 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에는 이 문제를 범죄로 보지 않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 중고생들은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 원인에 대한 질문에 '장난으로'를 1순위(중복 응답 가능)로 꼽았다.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청소년기 특성 탓에 범행에 가담하거나 침묵하는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자신이 졸업한 중학교에서 딥페이크 사건을 목격한 고1 유지우 양은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교육이 왜 이뤄지지 않는지 의아해했다.

지우 양은 "사건이 발생한 학교에서는 근절 포스터가 붙어있지만, 전문가가 찾아오고 영상물 시청 정도로 그친 것 같다"며 "학교 단위로 사건이 발생했든 안 했든 우리들끼리는 전국적인 단위로 교육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성교육 내용이나 강사 등을 두고 일선 학교들은 여전히 소극적으로 가르치는 데 그친다. 딥페이크 사태 이후에도 실제 성교육 관련 시수(현재 15시간)는 늘어나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 교육을 따로 해달라는 교육부 권고만 있었을 뿐이다.

'남녀는 평등하다'는 개념을 가르치는 '양성평등 교육'은 존재하지만, 그 안에 젠더 이슈나 여성 혐오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소년 재판을 받고 성교육 처분을 받은 가해 학생들을 교육하는 이한 활동가는 "특히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제일 어려워한다"며 "왜 그런 성교육 했냐고 양육자들의 계속된 항의나 민원을 받으면 골치가 아프니 결국 뻔한 성교육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청소년들만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할 때 답답한 마음이 든다"고 언급했다. 결국 이 사태는 기존 세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기존 세대들 안 그랬나요? 40, 50대 남성들은 성매매, 30대 남성들은 성적인 괴롭힘을 하거나 스토킹하거나 폭력을 저질렀고요. (잘못된 성 관념이) 50대에서는 이런 쪽으로, 40대에서는 저런 쪽으로, 10대에서는 딥페이크 쪽으로 발현됐을 뿐인 거죠."

이 씨는 전반적인 성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을 강조했다.

"폭력을 포함해서 성차별적인 인식을 벗어 던지면서 어떻게 인간으로서 관계 맺을 수 있는가, 교감할 수 있는가. 인간으로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그런 것들이 성교육 전반입니다. 그걸 해야 방관자도, 가해자도 줄어드는 겁니다. 그건 '모든 세대'를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요.

'기억이 삭제됐으면…'

계절이 바뀌며 학교발 딥페이크 사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무뎌져 가고 있다.

하지만 3월 새 학기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교사들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희 씨는 "만약 제가 어떠한 큰돈을 지불하고 이 사건이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게 얼마든지 내고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이 기억이 삭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학교로 돌아올 용기를 주는 존재도 학생들이다.

눈물을 흘리며 떨며 제보해 준 아이, 힘내라며 조용히 쪽지를 두고 간 학생들. 힘든 일을 겪었지만 교실에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보고 싶다.

가은 씨는 가해 학생이 자신에게 찾아와 용서를 구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에게 그 행동이 잘못됐다는 점을 교사로서 꼭 일러주고 싶기 때문이다.

"네가 호기심에 했던 그 장난들이… 선생님의 삶을 완전히 바꿀만큼 정말 너무도 많이 힘들었어."

가은 씨의 목소리에서 여전히 아픔이 묻어나왔다.

"너도 그 이후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라 믿고 싶구나. 그 일이 절대 장난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꼭 일러주고 싶다."

일러스트 디자인: 안드로 사이니 (BBC 동아시아 비주얼 저널리즘 팀)

취재·촬영·프로듀싱: 최유진

총괄 프로듀서: 김현정, 오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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