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화재 생존자 … '영웅이라 불릴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윌리엄 리(40)는 자신이 평생 살아온 아파트 단지를 휩쓴 불길 속에서 이웃들을 구했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최소 159명이 숨진 홍콩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 화재 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불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비극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소방관들은 여전히 불타버린 7개 아파트 동에서 주민 30명의 유해를 찾고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주민이었던 이들은 리와 마찬가지로 이번 대화재 당시 불운하게도 집에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원인, 더 많은 이들이 탈출하지 못한 이유는 현재 홍콩 행정장관의 지시 하에 설립된 독립적인 위원회의 주요 조사 대상이다.
이미 해당 아파트 건물 외벽에 내화 기능이 없는 그물망이 설치돼 있었으며, 화재 경보 시스템 또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아내가 전화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알렸지만, 리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집안에서 화재 경보음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서두르지 않고 거의 10분간 소지품을 챙겼다.
그러나 현관문을 여는 순간 재앙의 규모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다가왔다. 솟구치는 연기에 잠식되어 결국 뒷걸음질 치며 집안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수화기 너머로 아내는 정신을 잃을 듯 소리쳤으나, 리는 당황할 겨를조차 없었다. 현관문 아래로 젖은 수건을 넣어 연기 유입을 최대한 막아야 했고, 그다음엔 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만 했다.
그때 문밖 복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는 연기로 가득 차 누가 외치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리는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복도로 나섰고, 손으로 더듬어 이웃 두 명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부부를 비교적 안전한 자신의 집 안으로 대피시켰다.
한편 인근 아파트 동에서는 바이 수이 린(66) 또한 이웃들을 돕고자 애쓰고 있었다. 바이는 이웃들의 문을 두드리며 화재 소식을 알렸고, 최소 세 가구를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이는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아들들은 지난 주말 어머니의 시신을 확인했다.
바이의 남편 입 카-쿠이는 BBC의 미국 파트너사인 CBS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아내에게 1분만 더 일찍 나오라고 했더라면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아내를 잘 안다. 아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지 않은 채 혼자 떠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리의 집 안에 같이 있던 중년 부부는 복도에서 다른 목소리를 들었다. 가사노동자가 노인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이내 잠잠해졌다.
이번에는 리도 도울 수 없었다.
리는 "너무 큰 죄책감을 느낀다"면서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다시 현관문을 열어 이들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리는 아직도 그날 복도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다. 이번 화재 사망자 중에는 인도네시아인 9명, 필리핀 1명 등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출신 로도라 알카라즈(28) 또한 이 아파트 단지에서 일하던 가사노동자로, 다행히 살아남았다. 알카라즈는 고용 가정의 생후 3개월 된 아기와 노모를 돌보던 중 불길을 마주했으나, 끝까지 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아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결국 세 사람 모두 소방관들에 의해 무사히 구조되었다.
알카라즈는 구조되기 전 가족에게 여러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한 메시지 속 알카라즈는 "몸이 약해졌다.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리의 집으로 대피했던 부부(현지 언론에서는 '초우 씨 부부'로 보도)는 자신들도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한 비상구는 불길에 막혔고, 초우 부부는 다른 비상구는 잠겨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불길이 너무 거세고 폭발도 계속 이어져 2층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도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웡 푹 코트의 부동산 관리사인 덴마크 기업 'ISS'의 자회사는 당시 비상구가 잠겨 있었다는 보도와 관련한 BBC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
리는 "죽음이 나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라고 회상했다.
그래서 왓츠앱으로 친구들에게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아이들을 챙겨주길 바라. 너희들도 잘 지내길"이라며 하나둘 작별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러던 화재 발생 약 2시간 30분 후, 소방관들이 사다리를 동원해 이들에게 접근했다. 초우 부인은 홍콩 뉴스 매체 'HK01'과의 인터뷰에서 리가 소방관들에게 초우 부부를 먼저 구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나이가 많기에 리에게 먼저 가라고 했지만, 리는 오히려 자신이 젊으니 더 견딜 수 있다며 먼저 나가라고 했습니다."
소방관들이 다시 그를 구하러 돌아왔을 때, 리는 각종 사진 장비, 장난감 등 소중한 추억과 애착이 담긴 물건들로 가득한 집을 떠나기 꺼려졌다.
"불길이 내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고, 내게는 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불길을 막을 권리나 힘이 없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가족과 재회한 리는 이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가 겪은 공포와 비극의 참상은 새벽이 되어서야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다.
"몸에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는 리는 "코에는 타는 냄새가 계속 맴돌았다. 그 냄새를 꼭 씻어내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새벽 3시에 입원한 리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겪은 일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예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는 그는 "하지만 이번에는 간호사가 내게 (집에 가고 싶은지) 물었지만,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마주할 현실을 피하고 싶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리는 가능한 많은 인터뷰에 응함으로써 자신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리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서서 진실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면서 "웡 푹 코트 주민들에게 답과 정의가 주어지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추가 보도: 피비 콩, 그레이스 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