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지옥인지 몰랐어요'...폐쇄병동에서 무슨 일 일어나나
“제 딸은 고립된 채로 죽어갔어요. 다이어트 약 의존 '치료'를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병원에 간 환자를 어떻게 묶고 가둘 수가 있어요. 병원에서 몸에 맞지 않는 약을 먹이며,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도 왜 죽을 때까지 독방에 넣어 둔건지...”
지난 5월, 30대 여성 박수진(가명) 씨는 다이어트 약(디에타민) 중독 치료를 위해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 입원한 지 17일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박 씨의 어머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딸이 폐쇄병동에서 억울하게 죽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사지가 침대에 묶여있다 숨을 거둔 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똑바로 누울 수 조차 없다”며 심정을 전했다.
유족이 공개한 CCTV 영상에는 박 씨가 격리실에서 배를 움켜쥔 채 나가게 해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포착됐다. 그 후 간호조무사와 보호사가 들어와 박 씨에게 안정제를 투여하고, 양손과 양발, 가슴을 침대에 묶는 '5포인트 강박' 조치를 취했다.
약 두 시간 후, 박 씨는 코피를 흘리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지만, 의료진은 강박만 풀어준 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을 떠났다. 이후 박 씨는 의식을 잃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추정 사인은 가성 장폐색으로 밝혀졌다.
유족은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사망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진정을 냈고, 의료진 7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형사 고소했다.
한편 해당 병원장은 “사망 사건의 본질적 문제는 격리·강박이 아니라 펜터민(디에타민) 중독 위험성”이라고 주장했다.
BBC는 해당 병원측에 의견을 구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가 격리 및 강박을 당하는 동안 사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1월, 40대 남성 김영수(가명) 씨가 전체 입원 기간 12일(289시간 20분) 중 약 87%에 해당하는 251시간 50분을 침대에 묶인 채 지내다 숨진 사건도 있었다.
실제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중 정신병원에서의 부당한 격리와 강박에 관한 사례는 463건에 달했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 결과 실제 고발 등의 사후 조치가 이루어진 경우는 28건에 불과했다.
위은솔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정책위원장은 “격리와 강박으로 인한 정신병원 내 사망 사건이 한국에서 매년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5년에 진행된 정신병원 격리·강박 실태조사 이후 현재까지 추가 조사가 없어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진 사건들은 극히 일부라고 지적했다.
격리·강박의 위험성
폐쇄병동에서 환자 보호를 목적으로 시행되는 격리와 강박은 응급 상황에서 환자의 행동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조치지만 위험성이 뒤따른다.
보건복지부 격리·강박 지침에 따르면 격리란 제한된 공간에서 일정시간 동안 환자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 강박은 환자의 신체운동을 제한하는 행위로 손목이나 발목, 가슴을 강박대(끈 또는 가죽 등)로 고정시키는 것을 뜻한다.
격리·강박은 자·타해 위험이 있거나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에만 시행될 수 있으며, 격리·강박의 1회 처방 최대 허용시간은 성인기준 격리 12시간, 강박 4시간 이하다. 그리고 격리시 최소 1시간마다, 강박시 최소 30분마다 바이탈 사인(활력 징후) 관찰 및 평가를 해야한다.
김성수 다원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강박대를 이용해 사지를 묶고 침상에 고정해 장시간 보내는 자체가 신체에 큰 부담을 주고 폐색전증, 혈액순환 장애, 마비, 정형외과적 문제, 과호흡이나 호흡곤란으로 인한 내과적 문제, 체온조절 문제, 고혈압 등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환자 상태 확인은 필수”라고 전했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격리·강박 지침은 잘 지켜지지 않으며, 환자들이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김 원장은 “격리·강박 경험자의 약 20~50%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다"며 “자존감 및 사회적 기능 저하, 정신증 재발 및 악화, 치료 관계 악화 및 약물 순응도 감소와 치료 참여의 저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전했다.
반복되는 사망사고, '폐쇄성' 문제 지적도
격리·강박을 경험한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폐쇄병동의 제한된 환경은 외부의 감시가 어려워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잘 드러나지 않고 은폐될 수 있다며, '폐쇄성'을 반복되는 폐쇄병동 사망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저는 이틀 동안 강박을 당하고, 일주일간 격리실에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는 “진료 기록이 병원의 의도에 따라 작성되는 현실에서, 격리·강박 지침이 제대로 지켜진 걸 증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격리·강박 경험을 언급하며 "치료가 아닌, 포로 수용소에서나 이뤄질법한 인권 침해"를 겪었다고 밝혔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반희성 센터장도 과거 폐쇄병동에서 격리와 강박 조치를 당한 적이 있다. 그는 "격리된 환자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공간에서 혼자 조용히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환자와 함께 방에 강제로 묶이는 경우가 많다"며 한 여성 환자와 같은 방에서 강박을 당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리고 "주간에는 어느 정도 관리가 이루어지지만, 야간에는 환자 확인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관리의 부재를 지적했다.
이처럼 폐쇄병동에서 발생하는 관리의 부재와 인권 침해는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로 꼽힌다.
격리실 침대에서 장시간 강박을 당하다 죽은 김영수(가명) 씨의 유가족은 병원 의무기록지에선 확인할 수 없었던 인권 침해 현장을 CCTV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1차 강박: 78시간 30분
- 2차 강박: 51시간 40분
- 3차 강박: 16시간 10분
- 4차 강박: 38시간 40분
- 5차 강박: 66시간 50분
이는 김 씨가 1차 격리된 동안 연속적으로 강박된 시간이다.
인권위는 김 씨가 입원했던 병원이 성인 1회 최대 강박 시간과 연속 최대 강박시간을 위반했으며, 격리·강박 일지와 CCTV 영상과 일치하지 않은 기록을 확인했다. 예컨대 기록된 격리 해제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으며, 혈압, 맥박 등 환자 상태에 대한 점검 역시 기록과 달리 현저히 적었다. 자세 변경이나 관절 운동 같은 기본적인 조치조차 시행되지 않아 의무 기록의 신뢰성을 의심케 하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현재 정신병동에서의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할 경우, 인권위가 사건을 조사하고 조치를 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후적 대응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선도적인 개입에는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다.
격리·강박이 '유일한 대안'?
“한국 폐쇄병동은 부족한 인력과 자원 속에서 수용 시설로 운영되고 있어요.”
정신장애인 및 발달장애인의 인권 보호 활동에 앞장서 온 배광열 변호사(사단법인 온율)는 “격리 및 강박 등 기타 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이 발생하는 정신병원의 대부분은 수용시설로 운영되고 있다”며 병원 내 인력과 자원 부족으로 인해 치료보다 관리가 목적인 격리와 강박이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한국은 환자 60명당 정신과 의사 1명, 간호사 같은 경우는 환자 13명당 간호사 1명에 불과하다.
김 원장은 “1~2명의 간호사가 수십 명의 환자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환자 간 충돌이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격리와 강박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차악의 선택”이라 표현하며, 환자를 가두고 묶어 두는 방식이 시스템의 한계 속에서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대안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치료진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되는 일”이라며 “보람보다는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신체 강박을 당하고 싶어하는 분도 없겠지만, 신체 강박을 하고 싶은 분도 없어요.”
이화영 순천향의대 교수 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사회특별위원장은 '치료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강박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인력배치와 자원 투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배 변호사는 “환자들을 격리 시설에 입소시키는 형태의 치료 방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사망 사고)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폐쇄병동 수용 위주의 시스템을 혁파하기 위해선 “충분한 인력 확보”와 “환자들이 외래진료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증상을 관리하는 치료에 예산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신과 병원의 경제적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김 원장은 “정신과 병원에 투입되는 의료비와 수가가 다른 과에 비해 현저히 적다”며 “한정된 자원과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보다 보니, 치료보다는 ‘관리’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전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투자 비율이 2021년 기준 1.6%로 OECD 평균인 5.4%에 비해 현저히 낮다.
또한 정신의학적 응급처치나 격리 보호와 같은 강압 치료는 적은 수가라도 책정돼 있는 반면, 비강압 치료는 별도의 보상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이 위원장은 지적했다. 비강압 치료가 치료자의 고도의 상담 기술과 많은 인력이 요구되지만, 국내에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학적 치료로서 검증이 더 필요한 단계로 아직 수가가 책정되지 않았다는 것.
환자에게 강박 처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신의학계에서 잘 알려진 천주의성요한병원 이요한 원장 역시 비강압 치료가 원활히 시행될 수 있도록 이를 지원하는 수가 책정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환자가 흥분했을 때 진정시키고 대화를 통해 안정시키는 과정에 대한 수가가 없어요. 이러한 행위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침 위반 해도 '솜방망이 처벌'
폐쇄병동에서 사망한 환자 박수진(가명) 씨와 김영수(가명) 씨의 유족 모두 "책임자들이 꼭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병원이 격리·강박 지침을 위반해도 실제 강력한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배광열 변호사는 폐쇄병동 내에서 발생한 환자 사망 사건에 대해 병원이나 의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책임자들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많고, 처벌을 하더라도 간병인 정도 처벌을 받거나, 아주 가벼운 벌금(100만 원 이하)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법원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치료 목적의 불가피한 격리 및 강박이었다는 병원의 항변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정신장애인 인권 관련 법률 자문을 맡아온 정제형 변호사(법무법인 이공) 또한 병원의 폐쇄성으로 인해 입증책임에 있어 정확한 사실 확인이 어려워 완전한 진상 규명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정신건강복지법상 처벌 가능한 경우는 정신과 전문의의 지시 없이 격리·강박을 시행한 경우에만 해당된다"며 격리·강박 중 사망이나 상해 사고가 발생해도 격리 강박 기록지에 의사의 날인이 확인된다면 위법한 격리 강박 조치가 있었음을 다투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 씨의 어머니는 딸의 사망 사건이 방송을 통해 주목받자 여론이 변했다며 처음엔 주변의 냉담한 시선 속에 외롭게 싸워야 했지만,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인권위 등에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혼자 시위할 때는 그 누구도 저를 쳐다보지 않았어요. 변호사들조차 개인이 병원을 상대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했어요. 여태껏 이렇게 묻히는 사건들이 많았겠죠."
그는 반복되는 사망 사고가 “법이 개정되지 않고, 형량이 미비했기 때문”이라며, “법은 사고 후에 적용되지만, 형량은 사고를 예방한다”고 말했다. 박 씨의 어머니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병원의 관리 소홀로 발생한 폐쇄병동 사망 사고에 대해 책임을 묻고, 구체적인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의 유족은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어려움으로 꼽았다.
“(일반 대중들이) ‘고인이 얼마나 난동을 부렸으면 묶여 죽었을까’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어요. CCTV를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요. 그런데 영상을 보고 나서야 ‘그게 아닌데 묶였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거죠. 누구라도 마음에 편견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되면 사건의 진실을 똑바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김 씨의 유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신질환을 앓는다고 해서 생명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환자가 된 순간 생명이 마치 파리 목숨처럼 여겨진다”며 정신병원에 입원한 순간 환자의 생명이 경시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한편 지난 21일 법원은 김 씨가 사망한 병원에 대해 유족에게 2억 원대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 판결을 내렸다.
이에 김 씨의 유족은 “공격적인 행동이 없는 고인을 부당하게 격리·강박 후 방치해 사망했다고 인정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고 고인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기에 변호인과 상의를 통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고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밝혔다.
김 씨의 유족은 형사 소송도 다시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형사 소송이 민사 소송보다 먼저 시작됐지만, 경찰서가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진행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민사 소송 중 확보된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 소송 재개를 준비할 거라고 밝혔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깊은 편견이 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그 편견이 병원에 면죄부를 주어 살인죄까지 덮어서 처벌하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의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처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