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뼈를 묻겠다던 아들이었는데'…참사 생존자들의 아물지 않는 상처
"원래 우리 아들은 '이태원에서 뼈를 묻겠다'고 했어요. 그랬는데, 걔가 하늘나라 간 뒤에 메모장을 보니까 '이태원 거리를 다시 걷는게 불편하다'고 적혀있더라고요."
고 백형준 씨는 이태원 참사의 160번째 희생자다.
참사가 발생한 지 3년 반이 지난 올해 4월, 백 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참사 당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 주점에서 일하던 백 씨는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옮기는 등 구조 활동에 참여했다.
참사 4년이 지난 지금 이태원 상권은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참사 직후에는 그 여파로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서울시는 2022년 11월, 참사 직후 이태원 일대 소상공인의 매출이 참사 이전보다 평균 61.7% 감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고 백형준 씨가 운영하던 가게도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백 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참사 이후에도 여기서 버텨보려고 혼자 굉장히 노력했었다"며 "어느 날 오토바이 한 대를 사달라고 하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배달 수수료가 비싸서 가까운 거리는 직접 배달해 보려 한다'고 하더라.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 달라진 아들'
BBC가 만난 백형준 씨의 아버지 백가인 씨는 "이태원은 별로 오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흔이 넘은 그에게 아들은 전부였다.
요리 외길을 걸어온 백형준 씨에게 이태원에서 주점을 여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단골손님도 늘어나자, 백 씨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투자를 받아 2호점까지 확장하기로 했다.
참사가 발생한 당일은 2호점 개업을 이틀 앞둔 때였다.
"운이 굉장히 안 좋았죠, 아들이. 음식을 정말 좋아하고, 그래서 음식으로 성공해야 된다면서, 부모 몰래 취사병으로 지원해서 갈만큼 요리에 대한 애착이 큰 애였어요. 이태원에 이렇게 가게 확장까지 하면서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할 기회가 왔다'며 얼마나 기대를 했는데…"
백가인 씨가 다시 찾은 아들의 가게에는 백 씨가 운영하던 당시의 간판과 인테리어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가게를 보니 아직도 안에 들어가면 아들이 일하고 있을 것 같아요. 아들이 인테리어 컨셉을 위해서 소품을 많이 구해왔거든요. 그때 제가 이상한 소품 좀 수집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때 그 소품들이 여기 일부 그대로 남아 있네요."
참사 당시 백 씨는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옆 골목의 한 주점에서 지인을 도와 일하고 있었다.
참사 소식에 아들부터 걱정한 백가인 씨는 곧바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몇 시간 동안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늦은 밤이 돼서야 (아들이) 자기 동생한테 연락을 했어요. '전쟁터처럼 난장판이 됐다'고요. 안그래도 핼러윈을 맞아서 가게 안에 손님이 많아 정신이 없었는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가게 안으로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대요. 미군 병사 두 명과 함께 덩치 큰 아들이 인근에서 구조를 도왔다더라고요."
아버지는 아들이 현장에서 끔찍한 모습을 목격했을까 걱정했지만, "깊은 마음의 상처가 있을지는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백 씨는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아들의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이태원에 있던 자취방을 찾은 가족들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아버지는 백 씨에게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도 아들의 상태를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백 씨는 외부의 도움을 일절 거부했다. "부모까지도 이제 나를 정신적으로 이상 있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며 상담센터와 연락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백가인 씨는 아들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가족들에게 선보이는 등 화목하게 지내고 매사에 긍정적이었던 백 씨는 재작년 본가로 들어온 뒤 가족들과 대화하는 일이 줄었다. 언쟁이 잦아졌고, 갑자기 화를 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다 지난 4월, 백 씨는 실종됐다. 평소 SNS 계정을 공유하던 동생이 백 씨의 최근 검색 기록 등을 경찰에 제보하며 행방을 찾았지만, 며칠 뒤 백 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4년 흘렀지만 희생자는 계속
이태원 참사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다 숨진 공식 희생자는 총 4명이다.
159번째 희생자인 이재현 군은 참사 발생 43일 만에 숨졌다. 참사 현장에서 구조된 고등학생 생존자였던 이 군은 함께 참사 현장에 갔던 친구 두 명을 잃는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약 3년 뒤 복구된 이 군의 휴대전화에서는 그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흔적이 드러났다. 이 군이 시청한 이태원 참사 관련 영상에는 2차 가해성 댓글도 다수 달려 있었다. 그는 자살 예방 영상도 시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는 이 군의 사망과 관련해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들이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참사 현장에서 구조 활동에 투입된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다 사망한 소방공무원 두 명도 지난 8월 참사 희생자로 인정됐다.
직무 수행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소방공무원을 참사 희생자로 결정한 첫 사례다.
희생자로 인정된 남모 소방관은 참사 이후 우울과 불안, 수면장애 등을 겪었으나 공무상 요양 신청이 불허된 뒤인 지난해 7월 숨졌다. 박모 소방관 역시 현장 구급대원으로 임무를 수행한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다 지난해 8월 사망했다.
참사 이후 4년이 흐른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고통으로 남아 있다.
고 백형준 씨의 아버지 백가인 씨는 아들이 공식 피해자로 인정된 뒤에도 실질적인 지원을 받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백 씨는 "아들이 피해자로 1차 인정을 받고 나서 상담 치료를 지원해 줄 테니 나오라는 제안은 많이 받았다"며 "그런데 피해자 본인이 거절하니까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상담 기관도 바쁘겠지만, 실질적인 지원이 되려면 피해자가 상담을 거절하더라도 '그래도 한번 나와 봐라'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상담사가 직접 피해자들을 찾아와 대화도 나누고 상태도 살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부모가 직접 대화를 시도하는 것과 기관 상담사들이 나와 차라도 한잔하면서 대화하는 건 상당히 차이가 있었을 거거든요."
백가인 씨는 아들을 피해자 및 희생자로 공식 인정받는 과정도 까다로웠다고 전했다.
아들이 자살을 시도한 뒤 백 씨는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1년간 상담을 받았다.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에도 아들은 상담에 동행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상담 기록은 아들을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됐다.
"피해자나 희생자로 인정받을 때도 근거 서류를 가져와서 증빙하라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일어난 참사인데, 개인이 직접 증거를 마련한다는 게 쉽지 않지 않습니까?"
피해자 및 희생자 인정 신청이 접수되면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행정안전부 등 관계기관은 CCTV 영상, 구조 활동 참여 이력, 전문가 및 법의학적 소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피해자 및 희생자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백 씨는 아들의 인정 신청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관계기관이 제공한 CCTV 영상을 통해 참사 당시 아들이 구조 활동을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 및 희생자로 인정되면 생활지원금 지급과 의료·심리치료 지원, 치유를 위한 휴직 사용 등 법에 따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책임 소재 여전히 불분명
27일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중간 보고회를 열었다.
특조위는 이태원 참사가 어느 한 기관의 잘못만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며, 제때 출동하지 않은 경찰과 소방, 불법 구조물을 방치한 용산구청,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대통령실 등 여러 기관에 책임이 있다고 짚었다.
참사 발생 4주기를 맞았지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특조위는 2024년 9월 출범한 뒤 지난해 6월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지만,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이 보안을 이유로 자료 공개를 거부하거나 미뤘다고 특조위는 설명했다.
검경합동수사팀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지난달 30일 활동을 종료했다. 최성범 전 용산소방서장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며,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 혐의로 3명이 구속 기소됐다. 남은 사건은 경찰이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백가인 씨는 아들이 꿈을 키웠던 이태원에서 더는 아들의 성공을 지켜볼 수 없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들이 이태원에서 일했을 때 '아빠, 나 금방 부자 돼서 건물도 살 것 같다'면서 들떠 있었어요. 참사 이후에는 빚만 남고 경제적으로 허덕이면서 얼마나 부모에게 미안했을까요?"
백가인 씨에게 이번 4주기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들이 공식 희생자로 인정된 뒤 처음 맞는 이태원 참사 추모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까지는 이태원 참사가 그렇게까지 절실하다거나 내 일처럼 와닿지 않았지만, 올해만큼은 더 가슴이 아프고 미어진다"고 말했다.
"아들이 먼저 가고 나서 나중에 들어 보니까 아들이 이태원 참사 추모 행사 같은 곳에서 발언도 하고,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장이신 자캐오 신부님과도 이야기를 나눴었더라고요. 아들은 직접 현장에서 안타까운 모습도 보고 했으니까 참사에 대해 우리와는 또 남다른 감정을 갖고 바라봤었겠죠. 아들에겐 진작부터 의미가 남달랐을 겁니다."
"이런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관심을 더 기울이고, 당국에서도 여러 명이 모인다거나 하는 행사나 장소가 있으면 조금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면 하고요.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더 노력해 주십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