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약물 주입에도 살아남은 미국의 사형수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크리스타 파이크(50)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에서 사형 집행 과정에서 2차례 약물을 투여받고도 사망하지 않아 현재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그의 변호인이 전했다.
사형이 집행되는 도중 파이크의 변호인단은 법원에 사형 집행을 중단해달라는 긴급 신청서를 제출했다.
변호인단은 당시 상황에 대해 "파이크는 의식은 잃었으나,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었으며, 코를 고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변호인 중 한 명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펜토바르비탈이 든 주사기를 2개를 투여받은 파이크는 현재 병원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한 조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파이크는 콜린 슬레머(19)를 살해한 혐의로 지난 1996년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사형 집행을 두고 막판까지 법적 공방이 이어졌으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약물 주사를 이용한 사형 집행을 허용했다.
파이크는 18세 때 당시 남자친구였던 타다릴 쉽과 함께 문제 청소년을 위한 직업 훈련 캠프에서 알게 된 사이인 슬레머를 구타하고 고문한 뒤 살해했다.
슬레머의 어머니 메이 마르티네즈는 사형 집행을 원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 30일 저녁 사형 집행 실패 소식을 접한 뒤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엉망진창이다"고 토로했다.
당국은 이날(30일) 현지 시각으로 오후 8시쯤 내슈빌의 리버밴드 최고 보안 교도소에서 사형을 집행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파이크에게는 펜토바르비탈이 든 주사기가 2차례 투여됐으며, 집행 참관실의 커튼도 2차례 닫혔다.
AP 통신은 사형 집행 도중 현장에 있던 언론인들에게 퇴장해달라는 요청이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테네시주의 사형 집행 절차에 따라 첫 번째 약물 투여 후 사형수가 사망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2번째 약물 주사도 준비돼 있었다고도 전했다.
다만 2번째 약물 투여 후에도 사형수가 사망하지 않을 때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빌 리 테네시주 주지사는 미 현지 언론이 보도한 성명에서 "사건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자 제3자에 의한 포괄적인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남은 사형 집행 일정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한편 이번 파이크 사건은 올해 테네시주에서 사형 집행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첫 사례는 아니다. 1994년 3명을 납치 및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형수 토니 카루더스의 경우, 지난 5월 집행관들이 약물을 주입할 정맥을 찾지 못해 집행이 연기됐다.
한편 테네시주 교정국은 파이크의 사형 집행 시도 과정에서 취한 모든 행동이 적절했다고 주장했다.
도린다 카터 교정국 대변인은 '테네시안'지와의 인터뷰에서 "교정국은 법무장관실이 승인한 주 정부의 합법적이고 정립된 사형 집행 절차의 모든 단계를 준수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절차에 명시된 독극물 주사 투여 방식은 줄곧 효과적이었으며, 오늘 저녁 시행한 절차 외의 절차는 허용되지 않는다. 파이크는 외부 의료 시설로 이송됐다"고 덧붙였다.
파이크의 변호인단은 테네시안지에 "오늘 밤 테네시주는 다시 한번 합법적인 사형 집행에 실패했다"는 성명서를 기고했다.
"우리가 옳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다만 파이크가 우려했던 문제들이 실제로 드러났습니다. 정맥은 찾기 어렵고, 파열될 수 있으며, 사용되는 펜토바르비탈의 품질은 나쁘고, 불가피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비밀에 싸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파이크의 변호인단은 주사기 투여를 통한 집행이 실패한 것으로 보이자, 사형 집행을 중단하고 의료 처치를 제공해달라는 긴급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클리프턴 L. 코커 지방법원 판사는 결정문을 통해 "의료진은 신청서의 요청대로 의료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파이크의 변호인단으로부터 의료 전문가로 선임됐다고 밝힌 조엘 지보트 에모리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형 집행 시도 당시 파이크의 혈중 펜토바르비탈 농도가 호흡 중단 및 심혈관 기능 부전을 유발할 만큼 충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보트 교수는 이메일을 통해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지연됐기에, 뇌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파이크의 이번 사형 집행은 변호인단이 제기한 이의가 잇따라 기각되면서 진행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사형 집행을 막아달라는 신청 2건을 모두 기각했다.
앞서 하급 법원은 파이크 사건에 대한 주장을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집행 유예를 승인했으나, 지난달 30일 늦게 연방대법원이 이를 뒤집으면서 사형 집행이 가능해졌다.
변호인단은 1996년 배심원들이 사형을 선고할 당시 파이크가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 등 양형 참작 사유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왔으나, 연방대법원이 이를 기각한 것이다.
또한 변호인 측은 수년 동안 테네시주 정부가 법정에서 파이크가 어린 시절 성폭력 피해 주장을 거짓으로 일축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근 사형 집행 방식을 둘러싼 심리에서 테네시주 정부 측은 파이크의 성폭력 피해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주, 테네시주 주지사는 파이크의 사면 청원을 기각했다. 파이크는 주에서 유일한 여성 사형수다.
한편 파이크는 사면 청원서에서 슬레머를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고 단지 때리려 했을 뿐이지만, "자제"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나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18세 소녀였다"며 "내가 저지른 행위의 심각성을 깨닫기만 해도 수년이 걸렸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받아들이는 데는 그보다도 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나는 누군가의 자녀이자, 자매이자, 친구였던 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내가 그런 범죄를 저지를 능력이 있었다는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껍다"고 적었다.
1995년 벌어진 이 살인 사건은 피해자 콜린이 가슴에 사탄숭배 관련 상징인 뒤집힌 오각성이 새겨진 채 발견되면서 테네시주 녹스빌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다만 파이크는 자신이 그 상징을 새긴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살인을 저지르기 전, 파이크는 콜린이 자신을 모욕하고 당시 남자친구를 뺏으려 했다고 의심했다.
이후 직업 훈련 캠프에 머물던 다른 두 사람은 파이크가 사건 전후로 살인 사실을 자랑했으며, 콜린의 두개골 조각도 보여주었다고 증언했다.
한편 지난 주말, 슬레머의 어머니인 마르티네즈는 파이크의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자 수십 년을 기다려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단체가 나서 모금해 준 덕에 남편과 함께 플로리다에서 테네시로 이동해 사형 집행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콜린을 생각하지 않는 날은 단 하루, 아니 단 1분도 없다. 특히 명절이 되면 더욱 힘들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1976년 연방대법원이 사형 집행 재개를 허용한 이후 남성 1663명이 처형된 반면, 여성의 처형은 18건에 그쳤다. 이는 미국 전체 사형 집행 건수의 약 1%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