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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중 뇌 손상 입은 엄마를 다시 걷게 한 딸

2025.10.09
프레야 해리와 엄마 레이첼 모녀
BBC
현재 13세인 딸 프레야 해리는 과거 엄마 레이첼이 완전히 퇴원하기 전까지 11개월간 매일 병문안을 갔다

소파에 꼭 붙어 앉은 13살 소녀 프레야 해리와 엄마 레이첼에게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사람이 끊임없이 웃고 함께 즐거워한다는 점이다.

영국 웨일스 렉섬 출신인 이 모녀는 아주 돈독한 유대감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시작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다.

2012년 7월, 레이첼은 프레야를 낳던 중 심장마비 및 저산소성 뇌손상을 겪었다. 뇌에 산소 공급이 끊기면서 혼수상태에 빠졌고, 깨어난 이후에도 걷거나 말하거나, 스스로 앉을 수조차 없었다.

이에 당시 30세였던 레이첼은 딸 프레야가 태어나고 첫 11개월 동안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일부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레이첼이 다시 회복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말했으나, 레이첼의 어머니 캐런은 항상 "무언가가 (여전히 있다)"고 믿으며, 손녀 프레야가 바로 딸의 회복을 위한 핵심이자 "원동력"이라고 판단했다.

병원에 입원한 여성과 아기
Family picture
레이첼은 딸이 태어난 후 처음 3개월간 렉섬 멜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며, 이후 재활 병동으로 이송되었다

출산 후 3개월 뒤, 어느 정도 호전된 레이첼은 렉섬 멜로 병원에서 잉글랜드 위럴 소재 클래터브리지 병원의 재활 병동으로 옮겨갔다.

가족들은 매일 프레야를 데리고 레이첼을 보러 왔다. 레이첼은 갓난아기인 딸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과정은 레이첼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레이첼은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집에서 가족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딸과 계속 함께 있고 싶었다.

레이첼을 주로 보살피고 있는 캐런은 "집으로 돌아온 딸은 프레야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손녀가 걸음마를 시작하자, 레이첼도 체중을 더 실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 프레야가 하는 걸 엄마인 자신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캐런은 엄마가 어린 딸의 발달 과정을 통해 배우는 "역할 전환"이 모녀 관계를 "매우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어린 프레야와 엄마 레이첼
Family picture
가족들은 클래터브리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레이첼에게 매일 아기 프레야를 데려갔다

프레야가 레이첼의 재활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프레야가 집에서 하는 평범한 것들, 예를 들어 펜 잡기, 그림 그리기, 놀이 하기 등의 활동은 레이첼의 소근육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현재 프레야가 엄마와 함께하는 활동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쇼핑이다. 주로 옷이나 화장품 등을 사러 간다. "더 많이" 가고 싶다는 프레야는 엄마에게 쇼핑카트를 밀며 걷기 연습을 시킨다.

하지만 이 모녀는 그저 집에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코미디 장르다.

프레야는 "우리는 정말 많이 웃는다'면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 항상 엄마와 함께 웃는다"고 했다.

한편 프레야는 엄마의 움직임이 개선된 덕에 가족이 해외로 휴가도 가는 등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수영장에도 자주 갔고, 늘 같이 장난치며 놀았다 … 나는 엄마를 안고 수영장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사실 엄마가 나를 많이 안아주었다"는 설명이다.

캐런은 두 사람이 평범한 모녀처럼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레이첼과 프레야가 함께 수영장에 있는 모습이 얼마나 특별한지 몰랐겠죠. 정말 의미 있었습니다."

사고 이후부터 레이첼은 뇌손상 전문 사설 물리치료사의 치료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NHS) 지원 품목이 아니기에 가족과 친구들의 지속적인 모금활동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캐런은 딸이 느리지만 놀라운 회복과 진전을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앉거나, 말하지도 못했던 그는 이제 걷기도 하고, 대화도 하며 삶을 즐기고 있다.

캐런은 레이첼과 자매 사이인 엠마와 엠마의 가족 또한 레이첼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작업치료사는 레이첼이 이러한 환경에서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 했습니다 … (당시) 우리 집에는 영아 2명과 5살 난 아이가 자주 있었거든요."

"치료사는 우리 집이 너무 시끄럽고 분주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요양원에 보내길 권유했죠.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어요.

"그렇게 했다면 레이첼은 지금처럼 회복되지 못했을 겁니다."

클래터브리지 병원의 신경재활 전문의인 콜린 핀더 박사 또한 가족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결정이 회복의 핵심이었다고 말한다.

"심각한 장애를 입은 환자들도 결국 나중엔 자신만의 환경에서 더 나은 회복 속도를 보입니다. 레이첼의 경우에는 아이와 함께하는 환경이었죠."

핀더 박사는 레이첼에게 일어난 일은 "비극"이었으나, 이후 "정말 먼 길을 걸어왔다"면서 최근에는 자신의 진료실에 처음으로 "매우 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고 전했다.

캐런과 마찬가지로 핀더 박사 또한 프레야가 레이첼의 회복에 "핵심"이었다고 믿는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캐런, 프레야, 레이첼
BBC
캐런, 프레야, 레이첼은 휴가 때 찍은 사진을 보길 즐긴다. 이들은 아마도 내년쯤 다시 휴가를 떠날 수 있길 바란다

한편 프레야는 회복하고자 꾸준히 노력하는 엄마가 "매우 자랑스럽다"고 했다.

프레야와 캐런 모두 레이첼의 상태가 꾸준히 나아지길 바라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레이첼의 건강이라고 입을 모았다.

캐런은 "딸이 완전히 회복할진 잘 모르겠다"면서 "그러나 이미 기대를 뛰어넘었다. 계속해서 나아갔고,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녀 프레야에 대해 "딸을 똑 닮았다 … 놀랍다 … 작은 레이첼"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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