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한 미디어 재벌, 지미 라이는 누구인가?
홍콩 민주화 지지자이자 미디어 재벌인 지미 라이(78)가 15일(현지시간) 열린 공판에서 논란이 많은 홍콩 국가보안법에 따라 외국 세력과 공모한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추후 진행될 형량 선고에서 그는 최대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영웅으로 칭송받는 동시에 일각에서는 배신자로 비난받는 라이는 중국 정부가 2020년 도입한 논란 많은 법인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인사다. 해당 법은 1년 전인 2019년 홍콩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에 대한 대응으로 제정됐다.
이 국가보안법에 따라 관련 구호를 외치거나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는 등 중국 정부가 체제 전복적이거나 분리주의적이라고 간주하는 모든 행위가 범죄로 규정된다. 중국 당국은 홍콩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치라고 주장하나, 비판론자들은 반대 목소리를 사실상 봉쇄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라이는 2020년 12월부터 구금돼 있으며, 앞으로 수감 생활이 얼마나 더 길어질지는 불분명하다.
홍콩 당국은 법치주의에 따라 라이의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하나, 비판론자들은 그의 사건이 홍콩의 사법 제도가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한편 라이의 가족들은 구금 중 악화하는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해 거듭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올해 8월 그의 아들 세바스티안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국적자인 아버지가 단 5년만 더 감옥에 살아도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라이는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중국 정부를 향해 가장 강력히 비판하는 인물 중 하나이자,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지난 2020년 기소되기 몇 시간 전 BBC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타고나길 반항아"라면서 "나는 매우 반항적인 성격이다"고 말한 바 있다.
'개천에서 용 난' 사업가
라이는 중국 남부 광저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부유했으나, 1949년 공산당이 권력을 잡으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12세의 나이에 중국 본토의 고향을 떠나 어선에 몰래 숨어 홍콩으로 건너왔다.
홍콩에서 여러 일을 전전하며 작은 의류점에서 뜨개질도 한 그는 독학으로 영어를 익혔다. 이후 말단 직원에서 시작해 결국 국제적인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포함한 수백만달러 규모의 사업 제국을 건설했다.
이 의류 브랜드로 대성공을 거둔 그는 1989년 중국 당국이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고자 탱크를 투입하자, 사업가를 넘어 민주주의 운동가로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위 이후 베이징에서 벌어진 학살을 비판하는 칼럼을 쓰기 시작한 그는 출판사도 설립했는데, 훗날 홍콩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출판사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 중국 정부가 본토 내 그의 매장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하자, 라이는 회사를 매각하고 디지털 매거진 '넥스트', 유명 일간지 '빈과일보' 등 여러 민주화 운동 지지 매체를 창간했다.
중국의 압박이 점점 더 심해지던 홍콩의 언론 환경에서도 그는 출판과 창작을 통해 중국 당국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홍콩의 자유를 지키고자 막대한 위험까지 감수한 용기 있는 인물로 각인됐다.
그러나 중국 본토에서 그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반역자"이다.
최근 몇 년간 복면을 쓴 괴한들이 라이의 자택과 본사에 화염병을 던지기도 했으며, 암살 음모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위협에도 그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고,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두드러지는 역할을 맡았다. 2021년에는 불법 집회 혐의로 2차례 체포되기도 했다.
2020년 6월 중국이 홍콩의 새로운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을 당시, 라이는 BBC에 이 법은 홍콩에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라고 표현한 바 있다.
라이는 솔직한 발언과 대담한 행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21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며 홍콩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가 발행하는 빈과일보는 1면에 "대통령님,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라는 부탁으로 끝나는 공개 서한을 실었다.
라이에게 이러한 행보는 자신을 받아주고 성공의 발판이 되어준 도시인 홍콩을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일이었다.
과거 그는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홍콩에 맨몸으로 왔다. 이곳의 자유가 내게 모든 것을 주었다 … 이제는 내가 그 자유를 위해 싸우며 은혜를 갚을 때인 듯하다"고 말한 바 있다.
라이는 2020년 이후 불법 집회, 사기 등 다양한 혐의로 기소됐다.
한편 라이의 사건은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었고, 인권 단체와 외국 정부들은 그의 석방을 촉구해왔다.
아들 세바스티안은 수년간 전 세계를 돌며 아버지의 체포를 비난하는 한편, 홍콩 당국이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기개"를 처벌하고 있다고 규탄해왔다.
그는 "아버지는 입에 진실을, 마음에 용기를, 영혼에 자유를 품었다는 이유로 구금됐다"고 말한 바 있다.